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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반월터널 작업 -1990년

왕거미지누 2004. 7. 17. 13:35

[판화] 반월터널 작업 -1990년   

1990     /  고무판  /  판화 후 채색 


영동고속도로 인천에서 신갈방향으로 가는 길에는 반월터널이 두개로 갈라졌다가 터널을 통과하면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이 두개의 터널은 서로 오가는 터널이었으나 이후 새롭게 큰 터널이 옆으로 생기면서

두 터널은 신갈,원주방향으로만 쓰이고 있다. 

이 터널은 신갈,원주방향의 터널중 오른쪽 터널이며 끝지점이다. 군포쪽에서는 시작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일하러 가는 나는 서울에서 갔으므로 끝쪽으로 생각했다. 

민중미술운동단체인 서미련(민미련의 서울단체)에서 사무국장의 직함을 맡고 있었으나 

활동비로 나오는 월급이 9만원이었고 이것으로는 방값 월세를 내고 전철을 타기 위해 정액권을 끊으면 

담뱃값도 되지 않는 때였다. 그래서 단체일도 하면서 휴가비슷하게 시간을 내어 막일(노가다)을 하러다녔다.


당시 봉천동 산꼭대기 지하방에서 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친구의 소개로 전기공사 날일을 하다가 

통신일을 하다가 어찌하여 줄눈메꿈(메지라고 부르지만)일에 조공(시다바리)을 하게 되었다. 

이 판화는 줄눈메꿈의 조공할때의 모습이다. 

터널은 산을 파고 파위를 깍아 구멍을 내면 거기에 콘크리트를 부어 터널의 기초를 잡고 

거기에 타일을 붙이고 전기조명, 소방기기 들을 달고 바닥에 배수로와 아스콘을 깔면 되는데 

내가 속한 팀은 벽에 타일공들이 타일을 붙여 놓으면 타일과 타일사이의 줄눈을 메꾸는 일을 하였다.

나는 조공이었으므로 주로 시멘트와 모래를 고슬고슬하게 섞어서 전공들에게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왼쪽 벽면에 붙어서 일하는 두사람과 앞쪽의 한사람이 줄눈메꿈 전공이고 나와 다른 한사람은 

화면 가운데에 보이다시피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가져다 주는 조공이었다. 

조공 옆에 드럼통에는 물이 담겨있고 저 멀리 바위에 수직으로 구멍을 내는 기계는

다다다다다~시끄러웠다. 폭약으로 터트리고 나면 포크레인이 긁어서 덤프트럭이 싣로록 해주었다.


지금도 저기를 지나게 되면 같이 탄 사람들에게 내게 한일을 자랑한다.

집도 마당도 빌딩도 도로도 터널도 이땅의 노동자의 손길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들은 노동자의 손길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반월터널의 타일은, 타일줄눈은

적어도 내 손길이, 내 삽질이 들어가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훗~~~~~~~~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막일하는 사람들의 일당은 너무 적은 편이다만 암튼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건 이땅의 노동자인 것이다. 세상을 만드는 힘!!! 

그런데 이땅에서 노동자가 노동의 값, 노동자로서 대우를 제대로 못받고 있다,아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