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서 치료받으면 비행기 표값은 뽑아요"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8.04.25 15:03
[[오마이뉴스 이지훈 기자]미국에 오면 대부분 '친미주의자'가 된다는데, 사물을 늘상 삐딱하게 바라봐온 습성이 몸에 배어서인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미국이 우리나라에 비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가능한 객관화시켜 미국 사회를 바라보려고 내 견해를 주변의 지인들에게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안 좋은 것만 많이 눈에 들어온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하겠지?
귀국하기 전 마지막 '엿보기'로, 일반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미국이란 나라의 실상과 오해를 몇 가지 풀어 볼 요량이었는데, 전국적으로 < 식코(Sicko) > 상영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에,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와 관련하여 잠깐 살펴보려 한다.
누구나 외국에 그것도 미국에 1년 이상 체류하러 간다 하면, 경험자로부터 자문과 훈수를 받는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조언을 받았다. 여러 얘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공통적인, 그것도 아주 '강력한' 주문이 하나 있었다. "미국 가면, 가능한 아프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아니 아픈 것도 '가능하게' 아프거나 안 아플 수 있나? 보험 다 들고 가는데 무슨 걱정이람.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뭐 별 문제 있을라고…. 이렇게 별 생각없이,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며 이 곳에 건너왔다.
그런데… 이 곳에 오니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히 올 초 감기로 한 보름 정도 고생한 것 외에는 아직까지는 큰 병을 앓지 않아 항상 감사한 마음이지만, 이곳에서 살고 있는 한인(교민)들의 경우를 보고 들으며, '이거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
< 식코 > 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치 견해도 필요없다
'식코'(Sicko)란 미국에서 쓰는 속어로 '정신이상자'를 말한다. < 식코 > 를 제작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 영화에서 누구를 '식코'라 했을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는 미국의 민영 의료보험회사와 미국 정부를 지칭한 것이라고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격한 제목의 영화인데도 대다수 미국인들의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다. 9·11 테러사건을 다룬 < 화씨 9·11 > 을 통해 미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감독이라는 과격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가 만든 작품인데도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인데도 < 식코 > 는 수천만 불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마이클 무어 감독을 미국 사회의 '주류'로 당당히 서게 했다. 애국주의가 판 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평가가 가능한 것일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이 영화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모두(미국인들)의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 화씨9·11 > 처럼 뒤에 감추어져 있는 '음모'가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좌파든 우파든, 어떠한 정치 견해차도 필요없다. 시민들의 삶 그 자체다.
현재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오바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힐러리 상원의원 - 이 글을 쓰는 지금, 그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다시 기사 회생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 이 주요한 대선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의료보험 제도 개선'이다(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힐러리는 이 문제와 관련 이미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선거공약은 유권자들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다. 최근 치러진 한국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물질 욕망'을 움직인 '뉴타운 공약'이 가장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이 공약을 최대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만 해도, 그만큼 미국인들의 관심사라는 것을 반증한다. 어쩌면 이 공약이야말로 힐러리를 지금까지 지켜온 일등공신이 아닐까?
혹자는 이 영화에서, 세계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건강보험 시스템에 있어서는 37등이라는 것, 이로 인해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무료 의료 시스템의 나라들보다 짧다는 것 등을 보며 내심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수술비 때문에 손가락 하나를 포기하는 사람을 보며 노동인권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이런 일이 있었던가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문제와 관련된 의료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게 냉소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주로 미국의 중하류 계층이며 그 속에 한국 교민들도 다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주목할 것은 영화 도입부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영화가 미국 내 의료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는데도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아 생명을 잃기까지 하는 보통 미국 사람들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하물며 5000만명에 달하는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어떠할까?
"적어도 감옥에선 세 끼 식사와 무료 의료가 제공되지 않나"
지난해 6월 < 뉴스위크 > 지에 마이클 무어와 함께 < 식코 > 를 찍으려고 쿠바로 가서 치료를 받은, 9·11 자원봉사 구조요원으로 활동한 레지 세르반테스의 얘기가 실렸다. 미국인은 쿠바에서 돈을 쓸 수 없다는 규정을 무어의 제작진이 어겼다는 혐의로 미 재무부가 조사 중이었는데, 그 때 레지 세르반테스가 이에 항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사하느라 힘들이지 말고 그냥 나를 잡아가라. 적어도 감옥에선 하루 세 끼 식사와 무료 의료가 제공되지 않나." 고문·반인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들은 그나마, 아니 수준높은 의료혜택을 누리는데, 9·11 자원봉사 구조 활동에 나섰다가 부상당한 자신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한탄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미국에서 병을 앓는 이들이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과장된 얘기는 아닌 듯 하다.
쿠바의 의료제도를 체험하며 감격해 하고 병치료를 위해 캐나다로 넘어가 위장결혼까지 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마치 제3세계의 어느 후진국 인민들이 선진국에 와서 부러워하는 듯한 착각과 함께 측은함이 들기도 한다.
AP통신은 지난해 9월 13일, 쿠바여행을 미국 정부가 제한하고 있지만 매년 수만 명의 미국인이 쿠바를 은밀히 여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이 '은밀한 여행객' 중 의료문제 때문에 쿠바를 찾는 미국인들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교민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경험 및 주변에서 들은 얘기를 옮기면 주관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 현지 언론 기사를 인용한다.
미국에 살아본 이들은 한국의 의료혜택을 그리워한다
지난 1월 중순(2008. 01. 16) 미주 < 중앙일보 > 샌프란시스코 판에는 '한인사회의 건강·보건'이라는 제목의 신년기획 기사가 실렸다. 관련 제목과 부제는 이렇다.
한인 의료보험 미가입자 35.2% 최다 체류 신분 이유로 병원 꺼리다 손 절단하기도 마이클 무어의 다큐 < 식코 > 를 거론하며 시작한 이 기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못 가진 자'에 너무 불리한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헤친 이 작품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스트베이의 한 스시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근무하던 한인 A씨는 어느 날 생선 가시에 찔려 손이 부어올랐다. 비자도 없이 불법체류자인데다 의료보험이 없던 그는 병원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냥 낫겠지'하며 상처를 방치하다 급기야 손가락을 절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파상풍 주사 하나만 맞았어도 예방할 수 있는 사태였다.
'비싼'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세탁소 일만 열심히 하다 결국 위암으로 돌아간 B씨, 체류 신분과 무보험 처지 때문에 병원 치료를 포기한 채 영문도 모르고 밤새 하혈과 복통을 참아내야 했던 C씨….
사연들의 다수는 한인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지만 한 달에 수백불에 이르는 의료보험료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한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UCLA보건정책연구센터(Center for Health Policy Research)가 지난 200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려 35.2%의 한인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중·일·필리핀·베트남 등 9개 그룹의 아시아 민족 중 미가입률이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20.1%인 베트남계이고 4위인 중국은 미가입률이 16.2%에 그쳤다…(중략) …주류사회 의료보험 가입자도 돈 때문에 병원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의료 시스템에서 보험 미가입률이 최고인 한인 사회의 의료 복지 현실이 어떠할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주영기 기자) 이어지는 기사는 지난해 말(2007.12.31자) 미주 < 중앙일보 > LA판에 실린 서우석 기자의 글이다. 서 기자는 '불안한 의료선진국'이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 식코 > (Sicko)를 보며 순간 한국의 의료 제도가 떠올랐다. 개인의 소득과 재산 규모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납부하고 혜택은 똑같이 받는 한국의 건강 보험체계는 철저하게 시장논리를 따르는 HMO에 비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굳이 식코란 영화를 거론치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미국의 열악한 의료제도를 경험한 한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보험이 있는데도 치아 몇 개를 손 보고 보름치 월급에 가까운 돈을 낸 사람, 중병에 걸렸는데도 사전 승인이 나지 않아 치료를 거부당한 사람,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는 극빈층이거나 체류신분 문제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을 엄두도 못내는 한인까지…. 무어 감독의 영화에 나온 의료제도의 희생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자는 한국인임을 감사했다. 의료혜택 만큼은 선진국다운 한국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재외국민도 거소신고 직계가족 등을 통해 한국에 일정기간 체류할 경우 보험에 선택 가입할 수 있다). 미국에 살면서 의료제도에 쓴 맛을 본 한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의료혜택을 그리워한다.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동일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고 치료거부도 없는 그 때가 좋았다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보건의료정책 공약에 대해 일부 국민의 우려 목소리가 크다…(중략)…이런 국민적 우려는 LA 한인 등 재외 한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적어도 비행기표 값은 뽑는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인들이 꽤 많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정책이 미국의 그것을 따라가 몸이 아파도 아무 병원이나 이용할 수 없고 중병에 걸린 재외국민의 보험치료도 사전 거부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의료 후진국'으로의 여행은 그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왕복 항공료를 뽑을 길도 사라진다." 수술비 없어 살 권리 빼앗긴 미국인의 절규 "Why me?"
조금 길다고 생각하면서도 두 기사의 많은 부분을 소개한 것은, 이를 통해 미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고생하는 한인들의 실상과 고민을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면서 의료제도에 쓴 맛을 본 한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의료혜택을 그리워한다"는 것, 심지어는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인임을 감사하는' 기자의 글을 보면서 얼마나 절실하기에 이러한 표현이 나올까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곳 교민사회는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보다도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더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 실상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리라. "치료를 위해 한국에 다녀와도 왕복항공기 비용은 뽑는다"는 얘기 속에 교민들의 절실함이 배어 있지 않은가?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 인권인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조차 누릴 수 없게 되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누가 도입하려 하는가? 언급한 미국의 사례가 '먼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골수 이식수술을 끝내 받지 못하고 세상을 살 권리를 빼앗기고만 한 미국인의 "Why me?"라는 절규가 처절하게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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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기 전 마지막 '엿보기'로, 일반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미국이란 나라의 실상과 오해를 몇 가지 풀어 볼 요량이었는데, 전국적으로 < 식코(Sicko) > 상영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에,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와 관련하여 잠깐 살펴보려 한다.
누구나 외국에 그것도 미국에 1년 이상 체류하러 간다 하면, 경험자로부터 자문과 훈수를 받는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조언을 받았다. 여러 얘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공통적인, 그것도 아주 '강력한' 주문이 하나 있었다. "미국 가면, 가능한 아프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아니 아픈 것도 '가능하게' 아프거나 안 아플 수 있나? 보험 다 들고 가는데 무슨 걱정이람.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뭐 별 문제 있을라고…. 이렇게 별 생각없이,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며 이 곳에 건너왔다.
그런데… 이 곳에 오니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히 올 초 감기로 한 보름 정도 고생한 것 외에는 아직까지는 큰 병을 앓지 않아 항상 감사한 마음이지만, 이곳에서 살고 있는 한인(교민)들의 경우를 보고 들으며, '이거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
< 식코 > 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치 견해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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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격한 제목의 영화인데도 대다수 미국인들의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다. 9·11 테러사건을 다룬 < 화씨 9·11 > 을 통해 미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감독이라는 과격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가 만든 작품인데도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인데도 < 식코 > 는 수천만 불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마이클 무어 감독을 미국 사회의 '주류'로 당당히 서게 했다. 애국주의가 판 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평가가 가능한 것일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이 영화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모두(미국인들)의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 화씨9·11 > 처럼 뒤에 감추어져 있는 '음모'가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좌파든 우파든, 어떠한 정치 견해차도 필요없다. 시민들의 삶 그 자체다.
현재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오바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힐러리 상원의원 - 이 글을 쓰는 지금, 그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다시 기사 회생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 이 주요한 대선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의료보험 제도 개선'이다(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힐러리는 이 문제와 관련 이미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선거공약은 유권자들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다. 최근 치러진 한국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물질 욕망'을 움직인 '뉴타운 공약'이 가장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이 공약을 최대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만 해도, 그만큼 미국인들의 관심사라는 것을 반증한다. 어쩌면 이 공약이야말로 힐러리를 지금까지 지켜온 일등공신이 아닐까?
혹자는 이 영화에서, 세계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건강보험 시스템에 있어서는 37등이라는 것, 이로 인해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무료 의료 시스템의 나라들보다 짧다는 것 등을 보며 내심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수술비 때문에 손가락 하나를 포기하는 사람을 보며 노동인권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이런 일이 있었던가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문제와 관련된 의료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게 냉소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주로 미국의 중하류 계층이며 그 속에 한국 교민들도 다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주목할 것은 영화 도입부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영화가 미국 내 의료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는데도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아 생명을 잃기까지 하는 보통 미국 사람들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하물며 5000만명에 달하는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어떠할까?
"적어도 감옥에선 세 끼 식사와 무료 의료가 제공되지 않나"
지난해 6월 < 뉴스위크 > 지에 마이클 무어와 함께 < 식코 > 를 찍으려고 쿠바로 가서 치료를 받은, 9·11 자원봉사 구조요원으로 활동한 레지 세르반테스의 얘기가 실렸다. 미국인은 쿠바에서 돈을 쓸 수 없다는 규정을 무어의 제작진이 어겼다는 혐의로 미 재무부가 조사 중이었는데, 그 때 레지 세르반테스가 이에 항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사하느라 힘들이지 말고 그냥 나를 잡아가라. 적어도 감옥에선 하루 세 끼 식사와 무료 의료가 제공되지 않나." 고문·반인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들은 그나마, 아니 수준높은 의료혜택을 누리는데, 9·11 자원봉사 구조 활동에 나섰다가 부상당한 자신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한탄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미국에서 병을 앓는 이들이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과장된 얘기는 아닌 듯 하다.
쿠바의 의료제도를 체험하며 감격해 하고 병치료를 위해 캐나다로 넘어가 위장결혼까지 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마치 제3세계의 어느 후진국 인민들이 선진국에 와서 부러워하는 듯한 착각과 함께 측은함이 들기도 한다.
AP통신은 지난해 9월 13일, 쿠바여행을 미국 정부가 제한하고 있지만 매년 수만 명의 미국인이 쿠바를 은밀히 여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이 '은밀한 여행객' 중 의료문제 때문에 쿠바를 찾는 미국인들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교민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경험 및 주변에서 들은 얘기를 옮기면 주관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 현지 언론 기사를 인용한다.
미국에 살아본 이들은 한국의 의료혜택을 그리워한다
지난 1월 중순(2008. 01. 16) 미주 < 중앙일보 > 샌프란시스코 판에는 '한인사회의 건강·보건'이라는 제목의 신년기획 기사가 실렸다. 관련 제목과 부제는 이렇다.
한인 의료보험 미가입자 35.2% 최다 체류 신분 이유로 병원 꺼리다 손 절단하기도 마이클 무어의 다큐 < 식코 > 를 거론하며 시작한 이 기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못 가진 자'에 너무 불리한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헤친 이 작품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스트베이의 한 스시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근무하던 한인 A씨는 어느 날 생선 가시에 찔려 손이 부어올랐다. 비자도 없이 불법체류자인데다 의료보험이 없던 그는 병원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냥 낫겠지'하며 상처를 방치하다 급기야 손가락을 절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파상풍 주사 하나만 맞았어도 예방할 수 있는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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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들의 다수는 한인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지만 한 달에 수백불에 이르는 의료보험료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한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UCLA보건정책연구센터(Center for Health Policy Research)가 지난 200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려 35.2%의 한인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중·일·필리핀·베트남 등 9개 그룹의 아시아 민족 중 미가입률이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20.1%인 베트남계이고 4위인 중국은 미가입률이 16.2%에 그쳤다…(중략) …주류사회 의료보험 가입자도 돈 때문에 병원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의료 시스템에서 보험 미가입률이 최고인 한인 사회의 의료 복지 현실이 어떠할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주영기 기자) 이어지는 기사는 지난해 말(2007.12.31자) 미주 < 중앙일보 > LA판에 실린 서우석 기자의 글이다. 서 기자는 '불안한 의료선진국'이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 식코 > (Sicko)를 보며 순간 한국의 의료 제도가 떠올랐다. 개인의 소득과 재산 규모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납부하고 혜택은 똑같이 받는 한국의 건강 보험체계는 철저하게 시장논리를 따르는 HMO에 비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굳이 식코란 영화를 거론치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미국의 열악한 의료제도를 경험한 한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보험이 있는데도 치아 몇 개를 손 보고 보름치 월급에 가까운 돈을 낸 사람, 중병에 걸렸는데도 사전 승인이 나지 않아 치료를 거부당한 사람,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는 극빈층이거나 체류신분 문제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을 엄두도 못내는 한인까지…. 무어 감독의 영화에 나온 의료제도의 희생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자는 한국인임을 감사했다. 의료혜택 만큼은 선진국다운 한국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재외국민도 거소신고 직계가족 등을 통해 한국에 일정기간 체류할 경우 보험에 선택 가입할 수 있다). 미국에 살면서 의료제도에 쓴 맛을 본 한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의료혜택을 그리워한다.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동일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고 치료거부도 없는 그 때가 좋았다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보건의료정책 공약에 대해 일부 국민의 우려 목소리가 크다…(중략)…이런 국민적 우려는 LA 한인 등 재외 한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적어도 비행기표 값은 뽑는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인들이 꽤 많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정책이 미국의 그것을 따라가 몸이 아파도 아무 병원이나 이용할 수 없고 중병에 걸린 재외국민의 보험치료도 사전 거부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의료 후진국'으로의 여행은 그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왕복 항공료를 뽑을 길도 사라진다." 수술비 없어 살 권리 빼앗긴 미국인의 절규 "Wh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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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이 곳 교민사회는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보다도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더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 실상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리라. "치료를 위해 한국에 다녀와도 왕복항공기 비용은 뽑는다"는 얘기 속에 교민들의 절실함이 배어 있지 않은가?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 인권인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조차 누릴 수 없게 되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누가 도입하려 하는가? 언급한 미국의 사례가 '먼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골수 이식수술을 끝내 받지 못하고 세상을 살 권리를 빼앗기고만 한 미국인의 "Why me?"라는 절규가 처절하게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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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펌한 글입니다
펌하면 안되는건가 싶지만 워낙 내용이
우리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므로
꼬옥 다들 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