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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물길이야기◀/2006-열우물사람들展

벽화길이 된 안성길 신덕길,

왕거미지누 2006. 10. 28. 21:05
 

     벽화길이 된 안성길 신덕길,

             그 길에 묻어나는 열우물 동네 역사


신소영(십정동 주민센터 해님방 대표)




 나란히 서로 붙은 집, 집들이 모여 길을 이루고, 그런 길들이 이어져 동네를 이뤘다.

 예부터 있어온 함봉산 아래 웃열우물도 아니고, 십정녹지 터 아랫열우물도 아닌, 그 가운데 쯤 자리 잡으며 나중에 생긴 동네. 신덕촌이라 불리는 곳, 이 곳이 지금 설명하려는 우리들의 동네이다.


 함봉산과 만월산을 잇는 야트막한 산자락. 솔밭과 과수원, 묘지 들이 들어서 있던 자리에 허술하고 자그마한 집들이 늘어서기 시작한 건 60년대 후반부터였다고... 선인 학원이 들어서면서 도화동 일대 철거민들이 모여들어 우선 터를 닦았고, 70년대 초반 주안 5, 6공단이 옆에 들어서면서 일자리와 값싼 주거지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비가 오면 진창이 되어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다는 비탈길, 돌이며 가마니를 깔아 발 딛던 곳을 앞집 옆집 팔 걷고 시멘트를 깔고, 비탈이 심한 곳은 계단 길로 만들었다. 그래서 골목마다 계단의 넓이도 높이도 주인 맘대로 이웃 맘대로 지금껏 제각각으로 다른 재미난 곳.  지금은 집집이 수도시설이 있고, 화장실도 갖춰져 있지만 몇 개의 공동우물과 구시장 터 공동화장실은 여태도 흔적이 남아있다.

 물이 귀해 제한급수를 해서, 80년대 중반까지도 새벽녘에 일어나 통마다 가득 물을 받아놓고 하루를 썼던 것을, 막 쓰는 허드렛물은 우물에서 길어 쓰기도 했던 것을 사람들은 기억할까? 


  신덕1길 한 켠 백영아파트 자리와 지금 금호어울림 아파트 공사장은 애초엔 논이었다. 동네 앞에 길게 논자락이 펼쳐져 있었던 건데, 서너 살 조무래기부터 초등, 중등학생까지 커가는 동네 아이들에게 그 곳은 더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올챙이, 개구리도 잡고, 잠자리도 잡던 곳. 인천이 도시화되면서 땅 가진 이들은 부자가 되었고, 흐르는 물은 생활하수로 오염되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초부턴가 벼농사 짓기를 그만둔 논은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차지해 밭을 일구었다. 상추도 심고 깨도 심고, 콩도 심고, 수수와 옥수수도 심고, 학교운동장 앞 습지 쪽으론 미나리 밭도 있었다. 그리고 발길을 막는 울타리도 생겼다. 놀기엔 무논이 좋은데, 올챙이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쉽긴 했지만 그것까진 괜찮았다.  

 채소며 곡식 이름 맞추기도 하고, 겨울 빈 밭에서 공부방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고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다.


 1996년 선린교회 쪽 빈 터에 백영아파트가 들어섰지만 한 동뿐이라 함봉산 자락이 동네에 보여주는 전망은 초여름 아카시아 꽃향기와 함께 여전히 풋풋하고 시원스러웠다. 

 2005년 나머지 논밭 자리를 매립하고 2006년 3월부터 금호의 아파트 건축공사가 시작되면서 소음과 먼지, 냄새 등의 피해는 9층 10층 건물 높이가 올라가면서 동네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씌우는 골칫거리로 나타났다. 반도 안 올라간 건물 높이로도 함봉산 산자락 전망을 완전히 가렸다. 동네는 버림받듯이 아파트 건물들에 앞을 가로막힌, 갇힌 존재가 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사람들은 여전히 동네에 있고, 골목길을 오가고, 함께 모여 앉기도 한다.

 수는 많이 줄었다. 빈집도 늘었다. 2001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무산되면서 오히려 투기바람이 일어서 오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오른 집값을 위안삼아 집을 팔고 떠나갔다. 입주권을 바라보고 서울에서 어디서 와 집을 산 사람들은 세입자 관리가 더 귀찮다고 차라리 집을 비워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은 금방 표가 났다. 쓰레기가 쌓이고, 문짝이 고장 나기도 하고, 겨울이면 여기저기 수도가 터져 골목까지 얼음판을 이루기도 했다. 10년 넘게 끌고 있는 개선사업 들먹임이 동네의 중심을 흔들고 바꿔 버렸다. 동네를 뜨는 사람들과 함께 많은 추억들도 떠나갔다.


 아이 키우고 먹는 것 외에 쓰지를 않아서 한 사람만 직장생활을 해도 알뜰살뜰 아끼며 살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10년 전인 90년대 중반까지도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는 대부분 아이를 돌보며 집에서 부업을 했다. 이웃끼리,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 모여 손은 일하고 입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점심도 아주 자주 동네잔치처럼 먹었다. 하루는 이 집에서 보리밥을 해서 상추며 고추장에 비벼먹고, 다음 날은 저 집에서 열무김치가 잘 익었다며 국수를 삶았다. 여름이면 골목길에 전을 펴고 지나가는 사람이며, 혼자 사는 이웃의 할머니도 불러서 먹는 정을 나눴다. 아이들도 그 걸 보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 있는 엄마가 드물다. 혼자 벌어도 맞벌이를 해도 들어오는 돈보다 쓸 데가 더 많다.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뛰노는 아이들로, 골목길 모여 앉은 사람들 수다로 왁자지껄 살맛나던 길은 이제 제 모습을 잃었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지만  동네사람들의 마음은 겨울보다 먼저 썰렁하고 외롭다.


 수 년 전부터 길을 살리고, 동네를 지키며 안성길, 신덕길에 그려진 벽화가 동네 사람들의 눈길에 자주 들고, 마음에도 들어와 마음색도 밝고 산뜻하고 따뜻하게 물들여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