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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마을교육] 동네에 그림 그리는 사람 한 명쯤은

왕거미지누 2021. 12. 23. 22:52

제목: 동네에 그림 그리는 사람 한 명쯤은

 

                                 소속: 거리의미술

                                 직위 이름: 마을미술가 이진우

 

 

1. 산곡동, 동네에 그림그리는 사람 한 명쯤은 

 

부평구 산곡동1동, 이 동네는 일제 강점기에 계획된 주거지역이며
부평미군부대의 종사자들이 살았다고 하는 주택들이 있는 산곡동이다.
현재는 원도심 혹은 구도심이라 불리는 동네일뿐이다.
A4용지를 사러가는 오스카문구, 시계만 벽에 걸린 금은방 옹진당,
BYC백양 속옷가게, 냉장고 바지도 파는 한양이불,
주인이 얼마전 돌아가셨다는 신발가게, 하드와 라면을 사러가는 럭키백마수퍼,
그 옆으로 또띠양품이 있고 경남전파사, 아리랑한복, 강화전기철물, 골목집식당,
지금은 미술학원인 모아방, 시장고추방앗간, 청천떡방앗간, 부업하는 곳으로 바뀐 중고마트가 있고
경민약국은 저녁9시까지 문을 연다.
이런 동네의 사거리 모퉁이에 과일야채만물상회 간판이 달려 있는 가게가
바로 내가 그림 그리고 있는 화실이다.
창가 선반에 물감들과 색연필, 색종이, 크레파스 등이 쌓여 있어서
문구점인줄 알고 문 열고 들어왔다가 실례했다며 나가기도 하고
바로 옆 산곡초 아이들의 등하교를 도우는 분들이 노란조끼를 입고
화실앞 사거리를 지켜 서 있기도 하여 문열어두고 다녀도 좋거니와
먹을 게 생기면 동네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지붕도
빨간 벽도
화분에 심어진 고추도
빨래도
골목그늘에 의자를 두고 앉아 이야길 나누는 사람도
지나는 고양이도
의류수거함도 아름답다.
골목이 가지는 선들,
굴뚝과 전선과 케이블TV선,
폐타이어화분에서 자라는 해바라기,
골목길과 벽,
전신주와 석유통,
의자와 씀바귀 뽀리뱅이,
골목너머 하늘과
더 멀리 산까지
나의 눈에 담기는 동네는 참말로 애정이 들어있어서 그림이 되려고 한다.
동네가 좋고
동네는 그림이 되고
동네에 그림그리는 사람 한명쯤 있어도 좋다.


 산곡동연작-골목 / 2021 / 50*25cm  / watercolor on paper



산곡동연작-덕화원 가는 길 / 2020 / 36*26cm /  watercolor on paper



2. 십정동,  열우물마을을 만나다

옛날 우리집은 십정동 고갯마루에서 가장 높은 집의 지하였다. 지하라지만 창문 너머로 멀리 함봉산이 보이고 아랫집 지붕은  창문 아래에 있는 그런 전망 좋고 여름이면 개구리우는 소리가 한가득 들어오던 지하집이었다.  집-십정고개-동암역-서울로 이어지는 출퇴근,  술자리와 만남은 주로 동암역이어서 집 창문 아래로는 어떤 마을이 있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휴일 아내와 큰애 손을 잡고 시장이 있다고 해서 간 곳이 열우물 마을이었다.

'세상에 여기는 완전히 다른 동네야!! ' 
'여기가 달동네인가봐' 
아내와 나는 처음 가본 우리동네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비탈진 곳에 집들이 가득 차 있고 야채가게, 떡방앗간, 옷가게, 석유가게, 미용실, 양복점,치킨집, 분식집도 있지만 그냥 봐도 옛날 동네였다. 
아이손을 잡고 갔던 구시장 골목에는 '해님방'이라는 책을 빌려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책을 빌려 읽으면서 점점  열우물마을과 마을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마을의 공간과 벽들과 꽃들과 바람과 햇빛,  오가면서 만나는 이들과의 인사하던 마음들을 그림에 담게 되었다. 

열우물야경_3 / 2004 / 234*109cm / watercolor on paper



3. 공공미술 열우물길프로젝트 

 

인천시 부평구 십정1동, 선린교회 사거리에서 부평여상 사이의 동네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서울과 인천의 철거 지역에서 옮겨온 주민들이 야트막한 산자락을 차지해 동네를 이루고, 그 뒤 주안 수출 5, 6공단이 들어서자 일터를 좇아 노동자 가족들이 모여들면서 저소득층 주거 밀집지역으로 급작스레 커진 곳입니다. 
동네 초입에는 소방도로가 생길 예정이어서 빈집과 빈 집터가 있고  제법 그럴싸한 벽돌 건물들도 몇채 들어서 있어 예전 산동네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동네 안을 들여다보면 너무 낡아 세도  안 나가는 빈집, 빈방들이 많고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햇볕조차 가리며 골목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경제가 풀렸다 해도 점점 더 가난해져 장사도 안 되고, 후진 동네라고 외국인 노동자들조차 세들기 꺼려하는 곳, 주변을 에둘러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만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뛰어 놀고, 없는 사람들에겐 여기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학생수가 많아 저학년은 2부제 수업을 하였고, 이웃 동네에 십정시장(새시장)이 들어서면서 구시장으로, 이제는 구시장으로도 불릴수 없지만, 십정동에 시장터라고 불릴만큼 상가가 번영했던 곳, 그 시절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우리는 새로운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벽화제작은 열우물 동네의 환경을 아름답게, 열우물 길과 벽을 깔끔하고 개성과 생동감이 담긴 벽으로, 활기찬 지역을 만들어 내는 상징으로 될 것입니다. 또한 이렇듯 그림으로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 되고 이를 통하여 주민들의 삶, 우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윤택하도록 각자의 마음들을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는 이들과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작업하는 속에서 그것이 벽이든, 그것이 그냥 벽화를 하는 기술이든, 그것이 그냥 한 두 푼이든, 아니면 그냥 따뜻한 말 한 마디이든 함께 나누는 속에서 공동체 사회를 향한 작지만 아름다운 시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004년 벽화가 있는 열우물길 프로젝트 제안서) 

 

2002년, 어쩌다가 열우물 마을에서 벽화를 하게 되었다.  앞서의 기획서의 글이 아니라 그냥 해님공부방 아이들에게 선물이게 또 근처 동네사람들에게 밝고 환한 공간을 만들어 '희망'을 가지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몇 몇 집에 벽화동의를 물어보다가 막상 했으면 싶은 집에서는 하지 말라시고  생각하지도 않는 여러집들이 벽화를 요청하는 사람에 일이 커지고 말았다. 집주인으로부터 동의서를 받고 나서 페인트를 구하는 일도 벽화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도 또 후원을 해주실 교회, 성당, 단체들을 다니며 후원을 구하는 일도 다 하여야 했다. 그렇게 벽화를 하였다.   

2011년, 벽화를 하던 열우물길프로젝트는 더욱 풍성해져서 벽화 외에도 계단작업, 전신주벽화, 해님공부방 미술프로그램, 사진작가의 마을사진전시, 동네어르신 장수사진찍기, 마을우물벽화, 마을벽화안내판, 마을공공미술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때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이렇게 열우물 벽화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은 또 열우물에서 벽화가 아니라 열우물을 그림으로 그리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나 역시 함께 열우물 마을을 그림으로 담았다. 일년 중에 서너차례 스케치모임을 하고 동네를 돌며 그림으로 담는 일은 열우물 마을이 캔버스이면서 그림이 된다는 사실을 여실없이 증명해주었다. 

 

열우물길프로젝트-바람개비계단벽화 /2011 / 십정1동 / 귀여니,예인,바람, 챔,이정수, 쌍화탕

 

열우물에서 스케치하는 자바 /2011/ 36*24cm / 종이에 펜 드로잉 후 담채

 

 

4. 제20회 개인전 이진우의 산곡동연작

 

산곡동 근로자 주택은 1939년 일본육군조병창이 설립되면서, 그곳에 근무했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사택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미군이 주둔한 1945년부터 애스컴이 해체되는 1973년까지 이곳에 근무하는 한국인 종업원 등 서민들의 임대 주택으로 사용됐다. 이웃한 동네의 풍경은 수 번 달라졌지만, 이곳엔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주택을 따라 걷다 보면 백마극장, 봉다방, 경충철물, 정아식당, 덕화원, 희락원  등 역사와 추억, 삶이 깃든 장소들이 여전히 자리한다.  구역의 전체적인 구조도 큰 변화 없이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50년 이상 거주하며 생활했던 주민들의 소장 자료는 산곡동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산이다. 비록 조병창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영단주택은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변화된 시점에 건설된 근대 주거 문화이기에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지금, 지속적인 슬럼화 현상으로 안전과 화재에 노출돼 있다. 또 2000년대 들어 개발 붐이 일었고 이후 현재는 토지건물조사, 영업조사등 제반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1년 12월 현재 토지보상 건물보상이 본격적으로 논의 된다고 한다. 

십정동에서 이곳 산곡동으로 화실을 이사 와서도 한참동안은 이사온 열우물 마을을 그림으로 담기에 바빴고 관련 전시를 하고 있어서 막상 화실옆으로  산곡1동 행정복지센터, 산곡초등학교, 속옷가게, 이불가게, 시계도 금도 없는 금은방, 신발가게, 수퍼, 꽃집, 그리고 이곳 영단주택만의 마을모습들을 화폭에 담지 못하여 미진한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열우물마을 그린 그림을 전시한다고 알려 드리다가 드디어 산곡동을 그림으로 담아 전시를 하게 되었다. 한양이불 사장님은 전시엽서를 보시더니 왜 앞길 놔두고 뒷길을 그렸느냐신다. 앞으로는 그릴테니 모델서주십시요 하니 웃으신다.  산곡동연작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하는데 장소가 저멀리 남쪽 광양시 미담갤러리이다.  시작은 광양이라고 할지라도 산곡동을 그림속에 담는 일은 이후로도 이어져 갈 것이다. 

제20회 이진우전 '산곡동연작'
전시기간: 2021.4.24~4.30
전시장소: 미담갤러리 (전남 광양시 중마청룡1길 8-1)

 

산곡동연작-골목이야기 / 2021 / 53*38cm /  watercolor on paper

 

산곡동연작-빨래와 사람 / 2021 / 36*24cm /  watercolor on paper

 


화실에서 가까운 골목이다. 
마주하는 집 오른쪽 집에 사시는 반장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오래 사셨는데
예전에는 이 골목이 '명동'이었다고 하신다. 
명동만큼이나 사람들이 복작복작 거렸다는 것으로 알겠는데
내가 이곳 산곡동으로 온 게 2017년이니 명동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가게가 몇 남지 않았지만 시장을 가보면 알겠고 
옛 백마극장 주변의 간판들을 보면 바로 짐작된다. 
 
산곡동을 그리고 있다. 
옛 산곡동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건 아닌데 
화실 주변의 풍경이 아무리 봐도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인지라......
그럼에도 나는 오늘의 산곡동을 그릴 따름이다.
2~3년이면 재개발한다고 없어질 동네 같기도 하여
좀 더 동네를 그림으로 담아야 한다는 조금 다급한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