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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이것저것◀/지누의 이저런이야기

남자의 간

왕거미지누 2005. 9. 29. 07:19
토끼의 간


전기철


여자는 나를 늘 걱정한다. 그렇게 날마다 술을 마

시고 다녀도 간은 괜찮으냐. 토끼처럼 간을 빼놓고

다닌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간이 삭았겠지. 간

없이 다니는 게 편해. 간뎅이가 부어 보이지 않겠

지. 나처럼 왜소한 사람이 간뎅이가 부으면 어떻게

세상에서 살겠어. 그러니까 늘 비굴하게 살지.

나는 여자를 자주 속인다. 하지만 여자는 간을 찾

지 않고도 나를 충분히 위태롭게 한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면 여자 몰래 오래 묵은 책

갈피 속에 간을 끼워 놓는다. 그리고 실컷 술을 마

시고 집에 돌아와 보면 간은 졸아들 대로 졸아들어

있다. 간을 조사해 보면 여자의 성난 표정이 켜켜

이 묻어 있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어 토끼를 찾아간다. 토

끼는 내 간의 상태를 진찰해 보고는 고개를 흔든

다. 나는 토끼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토끼는 연신

고개만 흔들 뿐이다. 힘없이 돌아서는 등 뒤로 토

끼가 소리친다. 간을 너무 오래 두고 다녔어.



*『빨래 궁전』(오세영외, 바보새,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