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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의 운명과 예술품

왕거미지누 2007. 4. 10. 21:44

이글은 이종구님이 경기일보에 쓴 글인데

저아래 사진에 우리가 그린 농협창고 벽화 [삽질, 퍼버리자!]가 보입니다

벽화이후에 한번인가 더 가보고는 못가봤는데 마음이 아픕니다

왜 이땅의 위정자들은 미국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걸까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것인지 ...

저는 미군의 전략적유연성이니 뭐 이런말 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고통을 주는 그 어떤것도 바르지 못하다고 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할때만 사람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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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의 운명과 예술품

 [경기일보 2007-4-6]

2007년 4월초, 오랫동안 사람이 살고 있던 농촌 마을 대추리와 황새울 들녘은

이제 그 운명을 접었다. 집과 농지가 국방부에 의해 수용된지 3년, 마지막까지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주민 50여 가구가 모두 대추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대추리에선

지난 3년 동안 주민들은 물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마을을 지키는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봄 파종해야 할 옥답엔 철조망이 설치됐고, 주민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공부하고

뛰어놀던 옛 초등학교 건물은 무너졌으며, 오랫동안 살아온 빈 집들도 철거됐다.

그리고 마침내 주민들은 농사와 마을의 공동체를 잃고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 다시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 전, 지난 2004년 9월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돼온 대추리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935번째 마지막 촛불행사가 열렸다. 이제 곧 떠나야 할 시간을 앞둔

주민들과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수백명의 사람들은 농협창고에 모여 대추리에서의

추억과 아픔을 되새기며 촛불을 환하게 밝혔다.

행사의 후반, 대추리의 수호신과도 같았던 문정현 신부와 주민들이 무대로 나와 우리는

결코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자고 외치며 촛불을 높이 들었다.

행사가 끝이 나고 촛불도 하나 둘 꺼지는 시각, 그러나 주민들은 차마 마지막

촛불을 끄지 못한 채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대추리는 곧 깊은 적막과 어둠에 잠겼다.


대추리는 지금 역사 이래 가장 조용한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고단한 노동과

삶의 애환으로 힘겨웠던 마을은 며칠간의 휴식기를 거쳐 본격적인 철거 공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주민들이 모두 떠나 적막하기만 한 대추리엔 아직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대추리의 예술품들이다. 그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평화를 기원하고

대추리를 지키려는 의지를 담아 작품들을 남겼다. 어떤 작가는 아예 이곳에 상주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으며, 벽화와 조각 작품 등을 세웠다. 물론 마을 어린이들과

주민들도 참여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무슨 기금을 지원받은 것도 아니다.

순전히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물감과 철판을 사서 만들고 세우며 대추리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렇게 해서 대추리는 평화예술마을로 탄생됐고, 만들어진 작품이 100여점.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곧 철거위기에 놓여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작품을 파괴하지 말고

몇년 후 주민들이 새로 이주하게 될 장소로 옮겨 다시 평화예술마을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들 작품들은 한 시대 역사의 증거이자 평화를 사랑하는 상징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이 각계에 호소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관계부처의 반응은 무관심과 비협조였다.

다만 평택시가 5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줘 3~4점의 대표적인 작품들만 옮길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다.


과거 독일이 통일되면서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파편은 그 역사적 가치로 말미암아 귀중한

문화재가 됐고, 많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사례가 있다.

이에 비춰 우리의 문화인식은 빈곤하기만 하다. 더욱이 우리 정부가 평택미군기지 조성에

부담해야 할 비용이 약 5조 5천9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생각할 때 이 적은

이전비용은 문화의 시대를 지향한다는 정부나 기관이, 기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척박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만든 수많은 대추리의 예술품들은 대추리의 운명과 함께

파괴돼 영원히 땅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이를 즈음해 진정한 평화의 시대, 평화를 위한 길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대추리 2007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