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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물길이야기◀/2007-열우물을담다

십정동에 가다 -홍유진님의 글

왕거미지누 2007. 9. 6. 19:11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내 고향이 사라진다고 한다.

산 모양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 수많은 집들을 긁어낼 거라 한다.

거기엔 또 똑같은 모양을 한 아파트들이 들어서겠지.

 

그 곳에 태어나서 18년을 살았다.

내 유아기와 유년기와 사춘기를 모두 그 곳에서 보냈다.

소위 말하는 산동네였다.

학교와 집은 지척이었지만 서른두 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은 늘 멀고 고달팠다.

 

옥상에 올라가서 드러누우면 밝은 달이 눈 앞에 있었다.

우리 집은 그나마 낮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수백, 아니 수천 채의 집들이 엎디어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내 방 창문을 열면 시멘트로 만든 기와가 눈 앞을 가로 막았다.

가끔 검은 고양이가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럼, 나도 같이 노려 보곤 했다.

 

사실, 그 동네에서 좋은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못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깡패도, 험악한 이웃도 더러 있었다.

그 동네에 살던 친척 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결국엔 자살했다.

뒤이어 아들인 삼촌도 목을 맸다.

 

회색 콘트리트 지붕이 늘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소극적이었고, 늘 골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가끔 기가 센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곤 했다.

 

그게 십정동에서의 내 기억이다. 그게 내 유년기다.

 

 

 

그런데도 그 동네가 영원히 사라진다고 하니

가슴이 터질 듯 아팠다.

그 좁은 골목들과 시멘트를 그저 부어놓은 울퉁불퉁한 골목들과 희부윰한 가로등불이 떠올라 날 미치게 했다.

 

그 곳을 잊고 싶지 않은 건, 내 모태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버린 부모를  어른이 되어 다시 찾는 입양아처럼,

내 피 속에 열우물길이 나 있어 그 동네를 이처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 곳이 사라지면 그 바보 같았던, 미친듯이 머저리 같았던 어린 내가

영원히 사라져 버릴까 봐 겁이 난다.

십정동에 살았었던 어린 나는

그래, 바보 같고 등신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바보 같고 등신 같은 나를 사랑했었기 때문이다.

 

오늘 근 10년만에 십정동을 찾아가 이 곳 저 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친구와 함께 놀던 놀이터.

이젠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들.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옹송거리며 모여있는 낮은 집들을 둘러싼

위압적인 아파트의 모양새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모두 아파트 천지가 되겠지만.

 

난 이렇게 자주 과거를 돌아본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명쾌하게 전속력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족속은 가끔 이런 의식을 갖지 않으면

내일을 향해 한걸음도 제대로 딛지 못한다.

 

어쨌든 한 페이지를 넘긴걸까.

이제 그만 열우물에게 안녕을 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