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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民衆美術)이란

왕거미지누 2023. 3. 4. 11:31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회변혁운동. 민족미술.

 

내용 요약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회변혁운동이다. 민중미술은 기존의 심미주의적 형식주의가 판치는 미술계에 대한 반성으로,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는 미술인들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시민판화운동, 학생운동·노동운동의 걸개그림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해 나갔으며 사실적 묘사, 콜라주, 사진, 전통미술 도상 차용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를 표현했다. 1980년대에 한국미술의 새 흐름을 형성하여,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다.

정의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회변혁운동. 민족미술.
개설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기존의 심미주의적 형식주의가 판치는 미술계에 대한 반성으로,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는 미술인들의 자각으로 일어났다. 미술인들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시민판화운동,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의 걸개그림주1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시켜 나갔다.

민중미술은 사실적 묘사, 콜라주(collage), 사진, 전통미술 도상의 차용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를 표현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민중미술은 한국미술의 새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민중미술의 단초는 1969년 오윤ㆍ임세택ㆍ김지하 등이 ‘현실동인’을 결성한 이래, 동시대 문학의 민족주의와 통일에 대한 전망 등과 교류하면서 배태되었다. 본격적인 시작은 1979년 김정헌ㆍ오윤ㆍ주재환 같은 작가 및 성완경ㆍ최민 등 평론가들이 ‘현실과 발언’을 결성하여, 1970년대까지 한국미술계의 주류를 형성했던 모더니즘 미술을 비판하면서 이루어졌다.

또한 같은 해 홍성담ㆍ최열 등이 ‘광주자유미술인협회’를 결성하면서 동시대 민족문화운동으로서의 미술을 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1982년 ‘임술년’, 1983년 ‘두렁’ 등 소집단이 잇따르면서 현실과 역사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술활동을 벌였다.

1985년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이 탄압받으면서 서로 다른 갈래로 활동을 펴던 미술인들이 결집하여 민족미술협의회를 결성하게 되었고, 작가뿐 아니라 평론가들도 합세하여 공동 전선을 펼쳐나갔다.

이후 지역 미술인들의 현장미술 활동도 활발해져 19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사회변혁에 동참하는 미술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1987년 학생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에서는 대형 걸개그림 등이 현장에 걸리게 되면서 민중미술의 대중적 파급력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1988년 전국 현장미술운동집단의 연합체인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결성과 민족미술협의회의 현장미술운동집단의 형성은 운동의 폭이 전국적으로 크게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용
민중미술은 크게 기존 미술에 대한 반성과 문화운동으로서 미술의 기능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현실과 발언, 임술년 그룹 등은 역사적 주제나 사회적 주제, 도시와 대중문화, 자본주의적 현실 등의 소재를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미술활동을 펼쳤다.

반면에 두렁이나 광주자유미술인협회를 결성한 미술인들은 민중과 직접 소통하고, 민중이 생산하는 미술로서 미술이 사회 변혁에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시민판화학교를 열어 시민과 노동자들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게 하고, 탈춤 등 민족문화와 더불어 일과 놀이가 병행된 운동을 펼치며 노동 현장에서 활동하였다. 두렁의 작품이나 1989년 미술패들이 연합 창작한 「민족해방운동사」 연작은 집단 창작의 예를 보여준다.

따라서 민중미술은 작가 개인이 현실인식을 펼치는 작품과 더불어, 출판미술,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 현장의 걸개그림 등의 형식으로 확산되었다. 1987년 이한열을 형상화해 낸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걸린 가는패의 걸개그림 「노동자」는 대표적인 예이다.

민중미술은 동학농민혁명, 분단 현실, 6 · 25와 4 · 19, 5 · 18 등 역사적 사건을 비롯하여 통일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가 하면, 도시적 일상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노동현장, 농민들의 삶, 여성 등 이전의 미술이 다루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주제로 표출하였다.

민중미술의 이러한 다양한 측면은 민중미술이 형식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특성을 보여준다. 민중미술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실적 기법뿐 아니라 광고와 만화 등 대중적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하고, 사진과 콜라주 등을 통해 이미지를 조합하여 의미를 전복시키며, 전통적인 도상과 형식을 차용하여 재창조해 내는 등 다양한 경향을 보였다.

 

대동세상 / 홍성담

홍성담, 〈대동세상〉(오월광주 연작판화), 1984년, 목판화, 42×55.5㎝, 개인 소장. (자료 홍성담 제공)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일련의 목판화 작품 중 하나이다.
작가는 5월 광주의 현장에서 비극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가장 완벽한 대동세상을 보았다.

 

통일대원도/오윤

오윤, 〈통일대원도〉, 1985년, 캔버스에 유채, 349×138㎝, 개인 소장.
신명나는 사물놀이판의 역동적인 춤사위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일의 이미지를 창출해낸 대형 걸개그림이다.

 

한열이를 살려내라/최병수

 
최병수,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년, 광목에 안료, 바인더, 10×7.5m,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최병수 제공)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한열을
친구가 부축하고 있는 모습을 목판화 형식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사진은 작품을 걸어놓고 집회를 열고 있는 장면인데,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민중미술의 이상을 잘 보여준다.
 
 
노동자, 미술운동소집단 가는패

가는패, 〈노동자〉, 1987민중미술은 전시장과 현장에서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수행했다.
특히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민중미술가들은 ‘걸개그림’을 통해
광장과 거리를 민주주의를 숭배하는 장소로 변화시켰다.

 

경기미술관 전시실에 걸린 노동자, 서울민미련(가는패)

 

1988년 11월 13일 연세대학교 교정에 서울미술운동집단 ‘가는 패’의 걸개그림 <노동자>가 내걸렸다.
이날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및 노동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에 사용된 이 그림은
1980년대 후반, 걸개그림 형식의 일대 전환을 가져온 ‘가는 패’의 대표작으로 손꼽혔다.
1989년 3월 7일 현대중공업 계동본사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탈취된 뒤 사라졌던 작품 <노동자>가
(2019년 11월) 전시장 내부에서 복원됐다. 무려 30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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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글과

원본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1692

여러곳에서 따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