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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이것저것◀/미술인의작품들

화각인 김준권 전시안내

왕거미지누 2007. 3. 10. 19:20

2007 화각인 김준권 전시안내

전시기간  : 2007년 3월 28일(수) - 4월 3일(화)

전시시간 : 10:00-19:00

전시장소 : 인사아트센터 4층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110-300)

안내전화 : 02-736-1020

교통안내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사동방면 / 3호선 안국역 6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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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

 

 

<<서문과 약력>>

힘찬 호흡, 고요한 마음의 역설적 기호



        한국의 목판화가 널리 수용되고 향유된 것은 80년대부터라 볼 수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인 5,60년대의 토속적이고 설화적인 분위기를 띄던 박수근이나 정규, 최영림 등의 작품들이 제법 알려져 있었고, 70년대 이후의 세련되고 모던한 목판화들의 괄목할만한 조형적 성과들이 있었지만 역시 80년대의 민중·형상미술이야말로 광범위하게 대중들에게 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사회, 문화 운동으로서의 목판화는 그 기능과 작가들의 소박하고 나이브(Naive)한 표현 및 열정으로 인하여 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단숨에 시각문화의 총아가 되었다. 이는 70년대 중후반기 오윤의 출판물 표지화작업으로부터 80년대 후반기까지의 목판화의 소박함과 즉발적인 유격성은 동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통일을 이루며 그 소통의 극대화를 얻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고립된 구조와 개념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단초까지 제공 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김준권도 바로 이 시기 목판화의 진행과정 한 가운데 있던 작가였다. 제법 많던 80년대의 목판화 작가들 가운데서 지금은 몇 남지 않은 작가들 중 하나이다. 그만큼 명멸해간 목판화작가들이 많았고 또 지속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들이 드문 현실에서 보면 목판화가로서의 작업을 지속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가 반증된다고 하겠다. 민중미술 출신의 현재 남아있는 작가들의 경향을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보인다. 출판일러스트 경향으로 일정정도의 상업성(주문생산)을 유지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부류가 있고, 그에 비해 여전히 파인아트로서의 목판화를 고집스레 지속하며 조형적 실험과 자기만의 표현성을 확대하는 작가들이 있다. 김준권은 후자에 속한다. 물론 80년대에는 김준권의 작업도 정치, 사회적 내용의 명확한 전달을 위한 소통목적의 일러스트적 속성이 충분히 있었지만, 이후 90년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목판화자체의 물질적 속성과 표현, 기법 등에 더욱 천착하는 자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사실 김준권은 90년대 중반 민중미술과 더불어 운동적인 성향의 목판화가 퇴조를 맞을 때 무언가 많은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목판화가 구체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시대현실과 문화적 조건이 바뀌어 갈 때 목판화의 퇴조가 당연한 것임은 알았지만 목판화의 표현가능성과 매력, 그 자신의 감수성에 대한 열망이 컸으므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때부터 김준권은 비로소 목판화의 밀도라든가 목판화의 새로운 맛에 대한 조형적/이론적 탐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철저하리만치 목판화의 형식과 역사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점 그의 중국유학도 바로 전통에 기반한 새로운 목판화의 형식을 찾기 위한 것으로 유추된다. 한국의 전통 고판화의 실체를 체험하고, 일본의 시스템화 된 공방도 둘러보고, 마침내는 중국의 수인목판화까지 섭렵하며 독자적인 양식을 얻으려는 그의 고군분투는 목판화작가로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실천이자, 그 자신의 감수성을 증명하려는 소위 Fine Artist에의 욕망의 반영이라 하겠다.

        모든 것이 그렇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 역사, 문화, 정치의 환경이 바뀌고, 다시 사람들의 의식도 그를 반영하고 드러내는 미술도 바뀐다. 전통적이고 수공적인 장르, 80년대에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저항과 희망을 담으며 각광받던 목판화는, 그러나 지금 디지털시대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 처해 있다. 목판화를 선택한 작가들의 작업현실은 더 어렵다. 어떤 장르든지 이 고독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미술계의 관심(언어적 맥락/디지털 문화에 부응하는 매체론/대중들의 호기심/시장이 요구하는 상업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목판화의 조형적 속성은 이제 전시기획, 비평 등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김준권 또한 다른 작가들과 같이 이 가혹한 환경을 맞고 있다. 어떤 가치와 명분을 갖기에 선택할 장르가 많음에도 목판화만을 고집하며 형극의 길을 가는 것일까. 이제는 목판화의 외부적 조건보다는 새롭게 찾아야 할 표현가능성과 자신이 집중해야 할 주제에 깊이 있게 접근해 가는 원론적인 입장 때문일것이다. 운명처럼 선택한 목판화에서 디지털문화를 역으로 거슬러가는 또 다른 육체적 수공성과 시각성의 탐구를 찾는 그런 입장말이다. 아마도 이번 전시는 김준권의 이런 탐구에 대한 일종의 보고일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 동양3국의 전통적 목판화를 체험한 후 새롭게 추구하는 현대적인 형식/개념과 작가의 내면에 대한 육체의 반응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작품으로 말이다.


이웃과 세계에 대한 맑은 색채의 시선

        90년대 이후 김준권은 80년대의 단색목판화에서 이탈하여 지금까지 다색목판화를 지속해 왔다. 그렇지만 그 내용적 맥락은 80년대와 연관이 있다. 80년대의 전투적성향의 목판화가 스러져 갈 때 일군의 작가들은 민중적 서정성, 혹은 이웃의 소담한 삶의 현실을 그림에 드러내기 위해 풍경이란 소재를 택했다. 즉 큰 테두리에서는 여전히 ‘민중성’을 지향하였지만 각론에서는 운동보다 이웃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찾으려는 ‘일상적 서정성’으로 그 내용을 달리 했다. 그러니까 김준권 뿐 아니라 민중미술계열의 작가들 상당수가 여전히 8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현실적 소재들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80년대와는 다른 방법과 형식을 찾아야만 했다. 이념은 연장이 되었더라도 보여주는 옷은 달라져야 했던 바, 김준권이 택한 것은 우리 이웃들의 삶의 현장을 따스하게 다색목판화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전국을 기행하며 농촌사람들의 삶의 터를 온기 있게, 때로는 을씨년스러운 비애로 드러내면서 칼칼한 판각의 맛과 함께 그의 작업은 유려함을 더해갔다. 특히 1994년작 <귀로-겨울강>은 리얼리스트로서의 사실성, 칼 맛, 주관적인 표현성 등이 잘 어울리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중국에서 수인목판화를 익히고 돌아온 뒤부터 김준권은 칼 맛에 의존하던 선 위주의 판각법에서 면에 의한 색채의 변주가 많은 수성의 프린팅 중심의 기법으로 선회한다. 작품도 대작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약간의 변화의 조짐, 혹은 조형적 태도의 새로운 접근이 두드러진다. 이런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색채에 있어서 더욱 고명도의 화려한 발색으로 맑은 분위기를 걷어 올리는 점과, 원근(遠近)의 구조를 제거하고 평면성을 중심으로 색의 변주에 의한 이미지만을 걷어 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림이 밝아진다거나 색채가 맑아진다는 건 작가의 심리가 긴장으로부터 투명하게 이완되고 있다는 증거다. 90년대의 김준권의 풍경만 하더라도 황토색 중채도로 텁텁하거나, 검정색 결정판의 면적이 전체를 좌우하거나, 혼색된 면들이 우울하게 처리된 것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고명도 고채도의 맑은 원색들이 주로 구사된다. 아마도 지천명(知天命)을 지나고 비로소 80년대라는 무거운 무게에서 자유로워지며 마음껏 국토와 계절과 풍광과 사람들을 아름답고 맑고 투명하게 길어 올리는 것 일게다. 80년 광주이후 우리세대의 몸과 마음 한켠에 붙어 있던 그 무거운 원죄의식은 한편 자기성찰의 단서가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하고 무거운 태도를 갖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건이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작업이지만 오히려 역으로 현실주의라는 자기검증에 매여야 했던 면도 있었다. 김준권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 유연해진 것 같다. 현실을 지켜보면서도 무거운 이념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며 발랄한 조형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화우(花雨)> <복사꽃> <열정> <그리움> 등의 작품에서 이런 밝음은 더 강조된다. 평면으로, 색채이미지로 회귀하는 형식적 실험은 제목처럼, 우울했던 젊음에서 이제 탈출한 늙은 청년의 청춘에 대해 뒤늦게 부르는 만가(晩歌)인 듯하다. 최근작에서의 이런 변모는 형식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태도 때문이리라. 그림이란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진대, 대상을 맑게 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외부의 풍경, 혹은 이웃들의 삶, 대상, 소재들을 관찰하던 김준권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자기내부를 표현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뒤에서 언급할 모노톤의 더욱 간결한 <오름>연작, <산에서>연작과도 형식적으로는 다르지만 작가가 어떠한 지점에서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앞으로 기술할 단색 모노톤의 변주에 의한 풍경이 작가의 미학적·철학적인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이 밝은 다색 작업들은 김준권의 발랄한 감정·감성적 측면에서 세계를 대하는 결과물이다. 김준권은 일정기간 이 두 가지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기술했다. 하나는 경쾌하고 맑은 노래로, 다른 하나는 중후한 명상과 침묵으로.


묵(墨)으로 드러내는 마음

        동기창(董其昌)은, 오늘날의 풍경화에 해당하는 산수(山水)에 대해서 그것이 단순히 자연의 외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이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라 했다. 그리는 이의 주관적인 마음의 세계에 기초해서 귀법고인(歸法古人)-과거 화가나 화풍, 사상을 배우고/ 귀법천지(歸法天地)-천지의 이치를 본받고/ 귀법산천(歸法山川)-실제 풍경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복고적인 생각을 이론으로 정통으로 펼치면서, 천지의 조화를 이해하고, 사방에서 실재로 관찰하여 형상을 취하는 사면취지(四面取之)의 관조방식을 취한 이후 유아지경의 회화적 의경과 정묘한 기술에 의한 일품의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후에 남화를 북화의 우위에 두는 소위 상남폄북론(上南貶北論)으로 지칭되는 이 이론은 예술가의 일품적 재능, 지식, 경험과 수양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사대부의 품격이나 격조를 강조한 미학이다.

         그러나 그림이 단순히 작가만의 내면적인 취향이나 사대부들의 문학변두리에서 여기(餘技)로만 머문다면 이는 또 다른 자기함정이자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술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편중된 시각이라 하겠다. 미술이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정신적/물질적인 결과물이라 본다면 적어도 동기창의 이론은 사대부중심의 특정 계급이나 특정시대의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한계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분석하고 그리는 기능적 측면과 더불어 그림 자체의 울림이나 작가의 격조 있는 내면의 드러냄이란 점에서 이 이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김준권의 근작 단색조 목판화에서 나는 이와 같은 것을 보았다. 목판화의 형식이 정제되고 밀도가 치밀해지면서 보여지는 작가의 투명한 내면, 혹은 작업에의 진중한 집중에 의한 마음가짐 같은 것을. 설명적이고 서술적인 소재들보다는 화면의 장중, 담담, 절제, 엄격, 엄숙, 비장, 간결, 정적(靜寂) 등이 돋보이며 거기에 판면과 프린팅의 중첩에서 우러나는 먹색의 맑음과 흐림의 깊이가 울림을 증폭해낸다. 쉽게 설명하자면 과거 실체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던 실경에서 작가의 관념, 마음, 혹은 내면적인 풍경화로 전이되며 목판화의 새로운 맛과 멋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큰 진폭의 변화는 화면에서 여타의 소재와 색채가 줄어들며 외곽선으로 묘사된 집, 논밭, 길, 가로수들이 자리하던 시골풍경과 형태들이 빈 공간, 넓은 수묵의 단색 면,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산 경사면의 대담한 구획으로 대치된 것이다. 나무판면의 물성이 그대로 배어나오고, 발색은 아스라하게 한지로 스며들거나 표면에 얹힌다. 나무판의 돋은 결 사이 그 미세한 골에서 번지는 듯이 아롱거리는 색은 한지라야 발색이 가능한 그런 맛이다. 과거 조각도에 의한 형상 가장자리(Edge)부분의 날카롭고 강렬한 칼 맛은 이제 고전적인 어법이 된 듯 적당히 소멸되어 버리고, 단순하게 색 면이 겹쳐지던 다색목판화의 맛도 과거의 것이 되었다. 나무판면, 칼, 안료, 프린팅 모두에서 섬세한 감성에 의한 기술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게 과연 목판화일까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거와는 철저하게 다르다. 형식의 변용에 의한 목판화의 현대성 혹은 시각적 동시대성의 흔적들이 거기에서 배어나온다.

        칼의 사용횟수도 줄어들었다. 대상을 묘사하던 선묘 대신에 나무판면과 결로 어떤 느낌을 포착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직관적 선택이 돋보인다. 형상성과 내러티브가 현저하게 약화된 자리, 거기에 일종의 심적 추상에 이르는 나뭇결의 패인 골에서 찍혀 나오는 농묵(濃墨)과 돋을 면의 담묵(淡墨)의 자연스러운 합치가 감성의 기호(記號)로 위치한다. 많은 소재들의 생략도 그러하거니와 철저하게 색 면, 그것도 나뭇결의 질감과 숨결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나오는 넓은 단색조 면 사이에서 변주하는 수묵모노톤의 디테일은 감칠맛이 나면서도 웅대하며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새롭다. 그 느낌은 부드럽되(柔) 강(剛)하다. 단단함은 부드러움을 전제로 한다. 딱딱함이 강함을 이루기보다는 밀도가 높은 부드러움이 강한 ‘느낌’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김준권의 풍경에 비유해보면 허허로운 공간의 단단한 밀도(密度)라 하겠다. <오름> <산에서>연작은 군더더기를 제거한 유연한 강함, 그런 견고함이 빚어내는 공간적 감성의 힘이 안료와 종이의 표정에 묻어난다.

        이 간단하고 소략한 구도와 수묵화와 같은 모노톤의 색채변주는 담백하다. 그런데 이 모노톤은 그냥 간단히 구축된 색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간단한 풍경이지만 섬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갖가지 수성안료와 프린팅의 효과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색면들을 구축하고 있다. 우선 근경. 나무판면의 질감과 동양화 분채안료의 질료적 혼성이 두드러지며, 여러 번 프린팅 된 과정을 거쳐 구축된 밀도와 발색과 표정의 층위는 부드럽되 견고하다. 07년 작품인 <산에서-0703>이나 <산에서-0705>에서의 근경은 완전 검정색의 평면이다. 판면의 나무결조차 여러 차례 프린팅한 두터운 안료층에 덮여서 사라지고 검은 색면만이 무표정하고 완고하다. 이 실루엣으로 처리된 색면의 질감과 텍스쳐는 미니멀아트의 절대적인 물질성의 리얼리티를 연상시킨다. 원근의 거리를 소멸시킨 채 철저하게 두께감 있는 평면으로, 실루엣으로, 질료의 표정으로 환원된 이 근경의 축지(縮地)는 그다음 중·원경과 하늘에서 처리되는 안료의 얇음/번짐/스며듦과 대조/조화되며 이질적인 조형방식을 넘어 하나의 뉘앙스로 통일된다.

        실루엣으로 처리된 근경 능선 너머 먼 산들은 구불거리며 흐리게 대기원근법으로 처리되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형태로 필요한 자리를 지킬 뿐, 산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곡선, 그다지 소재로서의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곡선으로 처리된 산맥의 움직임은 언젠가 부석사(浮石寺)에서 보았던 앞산 능선들의 겹쳐짐처럼 리드미컬하며 허허롭고 장쾌하다. 이 아스라하고도 흐릿하면서 약간의 명암법, 수성 프린팅의 번짐효과, 잉킹하면서 나무판면에 석판화기법으로 드러낸 붓자욱 등은 풍경을 풍경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다시 철저하게 질료의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환원시킨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화면의 상당부분, 처리되지 않은 백지와 같은 넓은 여백인 하늘은 그자체로 비어있으면서도 충만하다. 고요함. 그 공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액센트로 새가 무심히 파적(波寂)을 일으키고, 순간 새의 동작도 산도 시간도 정지해 버린다.

        공간적으로 ‘비어있음’과 시간적으로 ‘정지’된 이 상황은 작가의 심상의 기표이자 기표가 표상하는 기의다. 텅 비고 광활한 이 이미지는 이른바 노자의 태허(太虛), 무(無), 불교의 공(空)을 연상시킨다. 풍경과 이미지가 있으되 서술이나 서사가 생략된 형상성과 질료감은 바로 눈에 보이는 풍경을 넘어서 작가의 마음의 상태를 볼 수 있게 한다.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찰나에 영겁이 있다”던 고승의 게송(偈頌)처럼 이 추상적인 비움/멈춤에 대한 깨달음(관념)이 바로 김준권의 마음, 행위, 내면적 정서가 된 것은 아닐까. 아마도 작가는 이제 지나온 세월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 보고 낚을 모양이다. 바라본 것은 자연이자 풍경이지만 들여다보이는 것은 본인의 마음이며, 그 마음이 바로 목판에 있음을 깨달은 듯하다. 따라서 김준권은 판과 나뭇결의 흐름에서 이미 있는 형상과 마음을 찾고서 최소한의 칼의 터치로 그 풍경을 드러낼 뿐이다. 형상은 여백을 찾고서 남은 공간이다. 여백 또한 형상을 찾으면 저절로 드러난다. 때문에 나무 판면의 성격을 거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결을 따라 마지막 프린팅 될 심상을 떠올리며 여백을 찾아가는 칼질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모두 몸에 의한 땀과 노동으로 겸허하다. 나는 그것을 “힘찬 호흡과 고요한 마음의 역설적 기호”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장쾌하되 고요한 마음으로부터 유래한 공간이기에 육체적 호흡과 고요한 마음은 대립이 아니라 바로 작가 의식내의 통일된 기호라 하겠다.


畵·刻·人 - 그리고 노동  

        기실 김준권의 모노톤 풍경연작은 풍경이되 과거의 그것처럼 실사풍경이나 진경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동기창의 이론처럼 일종의 현대적 문인화라 하겠다. 구체적인 현장성보다는 우리국토 어디에서든 본 듯한 풍경, 그것도 새벽이나 땅거미 지는 저녁나절 모든 것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회청색의 가장 맑고도 비일상적인 기억의 전형적 풍경이다. 이 근작들은 실경작품들과의 연계선상에서 보자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보인다. 그의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적 맥락의 바탕인 국토(자연)와 사람(서정성)의 합일이란 공통분모는 여전하다. 그렇지만 이웃의 일상적 삶과 풍경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고자 했던 다색의 색채작업에 비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관념으로 비교적 쿨(Cool)하게 진행되는 점이 다르다. 또는 구작들이 서술적으로 내용을 엮어가며 도출시키는 방식임에 비해 이 모노톤 근작은 내용을 소거하고 한 장면에 작가의 마음을 압축시켜 버린다. 따라서 소재와 설명이 비워져 버린 자리에 침묵의 ‘화문답(畵問答)’이 자리한다. 화두(畵頭)는 작업과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며 어떻게 통일시키는가를 몸으로 찾는 것이다.

        김준권은 근래 두 가지 방식으로 이를 지속해 왔다. 다색과 모노톤이라는 외피적 차이만은 아니다. 작업을 이끌어 내는 원천적인 방식이 두 개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좋을지, 하나로 정리되어 스타일화 하는 것이 좋을지는 모르겠다. 이는 작가에게 일임된 숙제며 그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목판화’를 통해서만 세계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려는 김준권의 궁극적 화두(話頭)가 <畵·刻·印>이 아니라 <畵·刻·人>이었음을 보면, 이는 단순히 기술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쟁이’를 넘어서는 것이며, 종국에는 그림(畵)과 프로세스로서의 새김(刻)과 찍음(印)이 모두 작가와 보는 사람의 마음(人)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목판화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사람에게로 다가서려는 김준권의 인간적 태도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이는 앞으로의 작업도 푸근하고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몸을 통한 노동으로서의 작업, 그게 사람과 이별하고 고속도로를 가속도로 달리는 디지털 시대 현대미술과는 다른 목판화만의 둔하고 느리고 소박한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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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권(KIM, Joon-Kwon)


1982년  홍익대학교 졸업

1994년 - 1997년  중국 魯迅[루쉰]미술학원 목판화 연구원

        중국 魯迅미술학원 명예 부교수


▲ 개인전

1984년  서울 그로리치 화랑

1983년  서울 그림마당 민, 대구

1992년  서울 그림마당 민, 전주 온다라 미술관, 부산 갤러리 누보

1993년  서울 나무화랑, 청주 무심 갤러리, 부산? 갤러리 누보      

1994년  서울 현화랑, 부산 갤러리 누보

1995년  일본 동경? 나까지마 갤러리, 중국 심양, 노신 미술학원 미술관

1997년  서울 이십일세기 화랑, 대구,  동원화랑

1998년  미국 L.A. 컨벤션센터 (98코리아엑스포) ,서울, 도올 갤러리

2000년  서울 Artside Net , 전주, 얼 화랑

2001년  부산  현대 백화점 갤러리

2003년  부천  부천 문화재단(복사골 갤러리)

2004년  서울  공평 아트센터

2005년  충북 아트페어 특별전(청주 예술의전당)


▲ 주요 단체전

1982년  2918(서울,관훈 미술관)

1983년  시각의 메세지 그룹전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 전, 80년대 민족미술 대표작품전

1986년  한국 민중판화전(일본 오오사카)

1987년  한국 민중판화전(뉴욕)

1988년  한국 민중판화 모음전, 아시아에 부는 바람(JALLA전 - 일본 동경)

1989년  80년대 민중판화 대표작품 선전

1990년  우리 시대의 표정전

1991년  3인 판화전 전국 순회(서울, 전주, 광주, 부산, 대구, 원주, 태백)

        홍선웅, 유연복, 김준권 3人판화모음 “갈아엎는땅” 발간(학고재)    

1992년  3인 판화전(독일, 쾰른, 안파리나 화랑)

1993년  김석환.김준권 목판화 2인전(서울, 현대아트 갤러리)       

1994년  [민중미술 15년, 1980 - 1994]전 (서울, 국립현대 미술관)       

1995년  전국 민족미술연합 창립전(서울, 미술회관)       

1996년  아시아 판화 미술축제(부산, 문예회관 전시실)       

1997년  오늘의 한국 목판화전(중국 심양, 노신미술학원 미술관)

1998년  세계의 장서표전(중국 深川)       

1999년  동강 별곡(서울, 가나아트센타)

2000년  서울 판화 미술제(서울, 시립미술관)       

        2000청주 인쇄출판 박람회 특별전 <현대 판화의 위상전>       

2001년  김윤수 선생 퇴임기념전(서울, 학고재 화랑)

2002년  민족미술 20년전(청주, 예술의 전당 미술관)        

2003년  한국의 숨결판화전(미국 뉴욕)

        한국 목판화전(미국 버팔로, 앤더슨 갤러리)

2004년  판화 미술제 특별전-한국 현대 판화(예술의 전당)         

2005년  韓/中/日목판화전(서울, 일민미술관)

        동방에서 부는 바람(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        

        모리 다쿠로. 김준권 판화 2인전(일본 나가노, 히도 뮤지엄)

        가고 픈 京畿秘景전(경기 용인, 경기도 박물관)

        2005 포천 아시아 미술제(경기, 포천 반월아트홀)

        세계 장서표전(서울, 인사 아트센터)

2006년  木印千江之曲 (서울, 공평 아트센터)

        울산 현대 예술관 초대전

        2006 코리아 통일미술전(광주, 광주시립미술관) 

        아시아는 지금 展 (서울, 중국 베이징) 

주요 작품 소장처(collection)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상명대 박물관, 현대중공업,

       중국 미술관(중국, 北京),

       神州 판화 박물관(중국, 四川), 魯迅大 미술관(중국, 審陽)

주소 :  365-810  충북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515

        韓國 木版文化 硏究所       Tel : 043-532-2658     

    E-mail : kj08@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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