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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원에 있는 만주花는 잘 피고 있는가?

왕거미지누 2007. 7. 6. 02:49
[전시 평]-배인석-당신의 정원에 있는
  당신의 정원에 있는 민주花는 잘 피고 있는가?


 

불편한 전시 평을 위하여

 

6월 민주항쟁 20주년-거리의 기억 展........

이건 제가 기획자이고, 출품 작가이긴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아, 이 전시를 의심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더불어 20년 전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경의를 한번 쯤 뒤로

 하고 그 역사적인 정신의 정통성에 대한 예술가적인 태도를 미심쩍고 못 마땅해 하는 한

산견이기도 하다. 먼저 기획의 한 측면으로 전시를 평가 할 수 있는 소스를 주고,

참여 작가 및 관람자들의 관람 평을 유도하여 스스로 평가 해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기존의 전시 평에 비해 다소 불친절한 글 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1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20년이란 세월의 무게와 이에 기반한 예술가적 자세에 대한 구태가 보이길

바라지 않는, 재점검의 필요성 때문이며 미완의 역사에 우리가 아직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참여 작가들이 아직도 같은 지역에서 오래도록 보아야 할

동종, 동업의 벗들이기에 논의나 토론을 촉발하는 글이기도 하였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기 때문이다.


시작해 보자. 먼저 나의 주변에 있는 예부터 들어야겠다. 지난 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전국 순회 노동문화 예술 전”을 화가와 만화가, 시인들 그리고

 민주노총등과 더불어 개최한 일이 있었다. 첫 전시로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개막식을 하고 간단한 집회를 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마침 국회에서는

비정규 법안이 통과되어 어수선하던 차에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들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분들이 참석을 하였던 것 같다. 참 세월이 유수와 같고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었다. 불과 약 20년 전에 합법적 노조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른 지가 언젠데, 이제는 정규직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고충을 같이

고민하고 있는 마당이 되다니, 자본주의는 미꾸라지 같이 흙탕물을 튀기면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일까? 예술은 과연 이 복잡함을 면할 수 없는 듯싶다.

이걸 다른 말로 다양성이라 하는 것 일까? 실로 사회가 복잡한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의문이다. 예술이 언제부터 이 땅에서 노동자의 편 이였을까 란

의문을 그리고, 왜 예술은 노동자를 세상을 바꾸는 파트너로 맞이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 남았을 뿐이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된 자세를 버렸을 때, 언제든지 예술은 당신의 곁을 떠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비정규직으로 하여금 현재 벌어지는 노노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만국의 노동운동을

지지한 것이지 합법적 노조 자체만을 지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예술가는 어때야 하는가?



갑자기,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거장인 자크 루이 다비드와 나폴레옹이 생각난다.

이는 지금에 있어 정당한 비교는 아닐지라도, 정치세력과 한 미술가의 관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보자는 의도 때문이다. 1789년 그러니까 200년도 전에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이때의 지도자는 로베르 피에로란 사람으로,

이후에 철저하고 냉혈한이란 평가를 받는 이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1800작

다비드는 실제 키도 작고 볼품없는 나폴레옹을 이상적으로 그려 정치 선전화 하였다.

나폴레옹은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산을 군인과 함께 실제 넘지 않았으며, 부대가 다

넘어 간 후 노새를 타고 안전하게 넘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철저함과 냉혈 함은 혁명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이들을 모조리

단두대로 숙청하였으니 그 수가 1년에 1만 명에 달았던 것이다. 물론, 그도 1년여

만에 실각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도 단두대에서 이슬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때에 다비드도 혁명에 뛰어들어 그의 실각과 더불어 고충을 당하는데, 이 후

그는 나폴레옹을 만나면서 기사회생한다. 그는 나폴레옹 정권이 1814년에 실각하기까지

 나폴레옹 정부의 충실한 시각 예술가였으며 그 또한 진정으로 나폴레옹의 정치를

 지지했던 것 같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집권기간엔 당연히 미술계의 독재자이면서,

또 하나의 나폴레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그의 정치적인 기반이 무너짐과

동시에 절멸함을 면치 못하였다. 예기서 예술과 정치에 대한 결탁을 우리는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은 정치보다 하위인가? 아니면 수단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길과 정신을 추구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 날 예술의 역사는 그 자신을 더욱더

진보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형국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또 하나, 몇 일전에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모 방송국의

 T.V 토론회가 있었다.  그 중의 한 장면이다. 20년 전에 길거리를 나섰던 패널 중에는

소위 386세대들이 다양한 현재의 자리에서 참가한 토론회였다. 당연히 회고와

비젼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우리는 아니, 새로운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전대협 초대 의장한테 한 전대협동우회 회장

(난 이 동우회의 명칭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질 않는다)의 질문요지는 이러하다.

20년 전의 시대정신과 20년 후인 현재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지금의 40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러나 대답은 기껏 자주. 민주. 통일의 연장,

민주화 세대가 통일세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곧 예나지금이나 차이가

별로 나질 않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아직도 박제 화된 자주. 민주. 통일만

외치면 그만인 것 일까?


미국의 NGO활동가들이 현지에서 새 만금 갯벌 살리기 3보1배를 하고 있다.

정치권에 있는 민주화세력은 20년 동안 확장된 민중들의 열망을 담은 새로운

정치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제도권에 들어간 386세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민중들이 뿜어내고

생산해낸 생태며, 생명과 평화며, 지역의 균형발전이며, 문화예술의 창달이며,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근본적인  민주주의를 정치적인 패러다임으로

창조해 내질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토론은 이렇게 흘러갔다. 여기서 잠깐

또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참여미술은 20년 전 민주화를 열망하며 거리를

활보한 민중들의 정신에 뿌리 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오늘날 이들을 대표하다는?

민주화세력의 세력권 안에 있어야하는가?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미술가들은

이 때문에 심란할 뿐이다.



기획으로 또는 기억에 대한 불순함으로

 

고민을 해 본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하는 기획을 잡아야 하니 말이다.

문제의 요지는 이렇다. 고루한 내용을 피해야 하며, 기획의 의도를 실현 시킬 수

있는 작가 군과 더불어 물적인 한계가 또한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고민거리들은 어느 전시 때나 보편적으로 적용 되고 있는 기초적인

고민거리 일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은 보통 전시 때하고 다른 부담스러움을

가지는 것이다. 이 부담을 좀 더 파헤치면 일단, 20년이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더라도 아주 긴 세월임에 틀림없다. 쉽게 변하기 힘든 강산도 “10년이면 표 나게

변 한다”는데, 사람과 사회의 변모야 오죽 하겠는가? 변화된 현재의 의식으로

20년 전의 사건을 쳐다본다는 것. 또한 의미 있는 현재를 인식하고 발언해야

《거리의 기억》전(6.6~6.26,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여섯 동네이야기 전시장면

기념식의 초대에 연연하지 않고, 예술가는 좀 더 자유로운 시대정신을

구가 하여야 한다.

 

《거리의 기억》전(6.6~6.26,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87년생의 6천100원의 선물 전시장면

새로운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리의 기억》전(6.6~6.26,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대학그림패 아카이브 전시장면

 알만한 이미지란 기억하는 자의 목소리일 수 있으며,

그것은 고루와 신선에 대한 이중적인 이미지 일 것이다.

우리들의 미래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머무를 수 없다.


하다는 것. 뻔한 20년 전의 사건을 바탕으로 현실과 참여가 가미된 새로운 의미의

미술적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막연한 기념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것.

기념식이야 20년을 살아오면서 밥그릇이든 정치적 소신이든 다양하게 분화된 뻔한

 사람들이 하면 되므로, 이 기념식의 초대에 연연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재우고, 다지고, 조리고 하여 먹음직한 밥상을 차려 자주 집에 드나드는 지인들과

손님들에게 내 놓아야 할까? 아니면 병증에 대한 처방이 담긴 탕약을 내놓아야 할까?

이렇듯 20년이란 세월과 고정된 역사적 사건의 결합은 부실한 전시기획자에게

부담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거리의 기억》전(6.6~6.26, 민주공원 기획전시실)이란

지역의 찬거리를 이용한 효험 있는 걸출한 상을 차리고 싶었다.


잠시 서울의 문화일보 전시장에 있는 최민화의 《역사적 울혈증과 회화적 기억》

전(6.7~6.24, 문화일보 갤러리)으로 넘어가 보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익히 알만한

 이미지들이 분홍빛으로 소란하고 격정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최민화란 작가는

전시장 밖 조그마한 테이블에서 얼굴빛이 분홍에 가득 찬 채 너무나 조용히 앉아있다.

방금 쓴 앞글을 정정해 보자. 알만한 이미지란 표현은 20년이란 세월의 간극으로 인해

어느 부류에 국한된 표현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국한된다는 것. 그것은 고루와 신선에

대한 이중적인 이미지 일 것이다. 경험 한자는 기억으로, 경험하지 못한 자는 새로운

정보이면서 기억에 대한 공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참 불편한 단어가 있으니,

바로 기억이란 단어다. 이 지점을 최민화는 “모든 회상은 불륜이다. 망각은 학살만큼

본질적이므로”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흔히들 아는 도큐멘타리가 비교적

객관적일 수는 있지만 완전한 진실을 담을 수 없다는, 흘러간 세월

 


《역사적 울혈증과 회화적 기억》전(6.7~6.24, 문화일보 갤러리)

출품작 “파쇼에 누워2”

이제 옛 기억의 한정된 공유만으로 같이 날자고 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에 대한  재현 불가능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드러난

기억만으로 숨겨진 기억을(소수의 기억이라 해도 좋고, 아직 조명되지 않은

사실이라도 좋다.) 거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건 또 다른 기억과 기억에

대한 투쟁이며, 기억 간의 억압과 착취가 가능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사회의 여론 매체를 통하여 요즘 대학생과 젊은 사람들이 87년 6월 항쟁을

잘 아느니 모르니 하면서 여론 조사형태로 보여 주곤 하는데, 과연 그들이

알아야하는 6월 항쟁의 진실은 무엇이며, 그 역사를 공유하여 전 세대들은

그들과 무엇을 도모하려하는 것일까? 기억은 권력을 가지고 바람처럼 저들을

억압하지나 않았는지도 모를 위태에 대하여 생각해 볼 대목이다. 기억의

억압이 크면 클수록 기억에 대한 사건과 관련된 자들에겐 가치 있어 지는 것이다.

 최민화가 가지는 역사의 한 순간에 자리했었던, 아니 경험한 자로서의 분노와

행동에 대해 스미는 기억과 더불어 미술적인 표현의 회의는 그래서 소극적인

나의 발언으로 일단락 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옛 기억의 한정된

공유만으로 같이 날자고 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당신의 정원에

있는 민주花는 잘 피고 있는가?

이제 스스로들 돌아보아야 할 시간의 지점이 된 것이다.


배인석(민미협 지역네트워크위원장)

[전시 평]-배인석-당신의 정원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