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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물길이야기◀/2007-열우물을담다

골목길이란 무엇인가? -안창고의 글입니다

왕거미지누 2007. 9. 10. 23:49

골목길이란 무엇인가?

 

골목길은 틈, 흔적, 사이, 휴지, 중지이다. 오래 전에 거대한 자연, 산으로 길을 낸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솔길을 만들었지만, 골목길은 문명이 스스로 만들고 구성했다는 점에서 오솔길과는 다르다. 골목은 각종 문명의 침입에도 살아남은, 자본이 장악해버린 대도시의 하이킥, 즉 강력한 도시화 과정에도 사멸하지 않고 연명하는 기이한 생명이다.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으며, 가령, 이사라도 할 요량이면 진땀을 뻘뻘 흘려야만 하는 그런 공간임에도 오직 그 공간에서만 한 개인의 쓰라진 상처가 다독여질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이 잇닿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골목은 집과 집이 만들어낸 일종의 ‘틈’이지만, 이 틈을 통해서만 우리는 ‘연대’의 가능성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골목은 문화가 활성화되는 ‘장’일 수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예컨대, 10여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의 모든 놀이는 골목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아니, 놀이를 통해 ‘광장’을 습득하고 배웠던 세대들에게 골목은 교사였으며 성장드라마가 펼쳐진 ‘마당’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한 사회가 유지되는 복잡한 규칙과 시스템을 배우면서 동시에 그 비열하고 저열한 이면을 문득 깨닫게 만들었던 스승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계 부품으로 전락해버리는 도시인들에게 자율적인 역량을 부여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골목이 우리에게 심어준 ‘씨앗’이 우리 삶과 사회의 자정능력을 고양시킨다면, 골목에 대한 탐사는 오늘날의 참혹한 풍경을 쇄신하는 중요한 원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투리 공간을 그저 놓아두지 못하는 대도시의 흐름은 골목을 파괴하고 틈과 사이를 그리고 휴지를 삭제해버린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 골목길은 기억의 공간이 되는 셈이며 그 기억이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골목길이 사라지는 가운데, 도시에서 형성되는 특정한 문화는 지배적 흐름에 파열음을 내며 골목길을 형성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령, ‘그래피티’는 지배적 조형예술의 축에 끼일 수 없었지만 하위계층의 화법을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 골목길을 형성한다. 즉, 그래피티를 축으로 하위문화의 여러 화법들인 비보이, 랩 따위들이 별자리처럼 놓여 있다.

물론 문화적 골목길이 자본의 새련된 언어로 둔갑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지나칠 수 없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문화논리가 자율적이고 자생적인 문화형식들을 모조리 자본의 가치로 환원해버리지만, 이런 문화적 골목길에 대한 기록은 충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도시적 삶의 능동적 힘과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