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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제신문-넥타이 벗고 붓을 든 사나이

왕거미지누 2009. 12. 12. 21:02

넥타이 벗고 ‘붓을 든 사나이’

 

 


이진우 ‘거리의 미술’ 아트 프로그래머

  지난 2일 서울시 도봉구 방학2동에 자리한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초등학생 10여명이 복지관 지하주차장 벽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복지관 내 벽화 그리는 동아리 ‘담쟁이(담벼락 아래 개구쟁이)’의 아이들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장난감박물관, 로봇 등 자신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 알록달록하게 색칠하며 연신 즐거운 모습이다.

아이들은 페인트가 묻은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작업에 열중하는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며 공공미술을 통해 베품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이진우(46) ‘거리의 미술’ 아트 프로그래머다.

 

거리의 미술 조직해 나눔미술 실천

그는 조선대학교 미술대 회화과 83학번이다. 대학 입학 후 개인 작품활동보다 사회 미술패로서 활동에 열중했다. 걸개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벽화를 그리는 일에 더 마음이 갔다. “정식으로 ‘거리의 미술’을 조직해 체계화한 건 1997년이지만 대학시절부터 계속 같은 일을 해왔다. 쉽게 말해 사람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벽화를 그리며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는 “미술 소외 대중을 미술 속 대중으로 이끌자”는 취지에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거리의 미술’을 조직했다. 1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지금은 공공미술의 기획·진행에서부터 학교 문화예술교육, 사회 문화예술교육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과 봉사활동을 펴며 나눔미술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림을 잘 못 그린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누구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벽의 한 귀퉁이에 대충 그린 그림은 낙서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구도를 잘 맞춰 그리면 멋진 벽화가 되는 거다.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벽화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화가가 되고, 작가로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공동 작업으로 공동 소유가 되는 벽화, 이런 게 바로 민주주의의 일반원칙 같은 게 아닐까?”

현재 60여 명이 거리의 미술 회원으로 있지만 집중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10명 안팎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쪽 일이 경제론적으로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생계 유지가 어려워 다들 직장을 다니고 개인 작품활동을 하며 거리의 미술에 참여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그는 행보를 달리한다. 얼마 전 15년간 근무하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퇴직했다. “사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한 것도 격일제로 일을 하기에 이틀에 하루는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였다. 물론 그때마다 벽화작업을 했다. 이제 거리의 미술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할애를 많이 하면 더욱 활성화할 거고, 그럼 생활도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웃음)?”

벽화 작업 통해 이웃들에 행복 전파

그는 거리의 미술 외에도 거주지이자 화실이 있는 인천에서 ‘붓을 들어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인천희망그리기’라는 봉사단체도 이끌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500여 명의 봉사 회원을 모집했다. 카페 게시판에 올라오는 벽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글 중 나눔미술활동의 대상이 될 만한 곳을 엄선해 무료로 벽화를 그려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그는 무료 벽화 작업을 포함해 평균 1년에 30차례 이상의 벽화 작업을 한다. 대학시절부터 이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온 셈이다.

주로 공공단체나 사회적 약자들이 모인 곳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혼자서 벽화를 그리는 일은 거의 없다. “시설 수용자나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꾸미고, 노동과 환경 미화의 즐거움을 공유해야 거리의 미술 취지에 맞기 때문이다.”

칙칙한 벽을 총천연색으로 바꾸면, 참여한 이들의 마음 역시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낡고 피폐한 동네라 하더라도 벽화가 완성되고 나면 그 지역에 활기를 부여해 주고, 마을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가끔 입소문이 나 타지에서 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한다. 그러면 벽화를 함께 그렸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이 ‘차별화되고 특별하다’는 인식을 갖고, 이런 생각은 자연히 고된 삶 속에 활기를 준다.”

그는 이런 보람 때문에 벽화작업을 놓지 못한다. “가끔 벽화를 그리다가 ‘도를 닦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 내가 정말 괜찮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게 도 닦는 거 아니겠나. 풍족한 생활을 못해 가족들한테 미안해서 그렇지(웃음).”

최근엔 경북 포항시 대송면 남성초등학교 담장에 140명의 아이들과 함께 대형 벽화를 그렸다.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가 주최하고, 거리의 미술이 주관(포스코·사랑의 열매 후원)해 포항시내 6개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이 모두 참여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는 벽화와 회화의 차이를 들어 벽화가 의미 있는 이유를 재차 강조한다. “가장 큰 차이는 소통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회화는 전시장에 내걸리면 작가와 전시장 오는 사람에게만 국한된다. 하지만 벽화는 지역민 전체의 것이 되고, 화가 아닌 그 누가 그리든간에 공공의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벽화가 훨씬 효율적이고 강력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매뉴얼 제작, 벽화 노하우 전수

그는 벽화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벽화 그리기 매뉴얼’도 제작했다. 전문적으로 벽화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겐 6만원 정도의 수강비를 받고 모든 노하우를 전수한다.

“상업적으로 벽화를 그리는 작가들에게 처음엔 눈총도 많이 받았다. 벽화 그리는 사람들만 알고, 신비한 것으로 남겨둬도 모자랄 판국에 노하우를 알려주니까…. 다행히 이젠 벽화가 워낙 대중화 돼 그런 일이 많지는 않다. 앞으로도 벽화를 배우고 봉사하려는 이들을 위해 좀더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시간을 쪼개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페인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품 활동도 한다. 여러 차례 그룹전도 열었고, 곧 개인전도 열 예정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가 가장 공을 쏟는 작업은 벽화다.

“벽화를 그려야 할 곳에 가 보면 거리의 온갖 느낌이 다 작품의 아이디어로 형상화된다. 벽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창작열을 발휘할 수 있다. 공동작업이라고 해서 내 작품이 아닌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작품을 이루니 작품에 대한 만족감과 애착이 더 크다.”

거리의 미술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문화예술진흥원·인천문화재단 등에서 기금을 후원받는다. 경우에 따라 벽화작업을 함께한 시설에서 페인트값 정도의 활동비를 받기도 한다.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그는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면서도 늘 즐거운, 계속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분명 난 행복한 사람이다.”
글=홍연정기자 hong@
사진=안윤수기자 ays77@

작성일 : 2009-12-07 오전 9:06:23

 

[건설경제신문 인터넷 사이트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