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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예교육 인천지역 활동단체 인터뷰-이진우편

왕거미지누 2013. 11. 8. 18:39

사회문화예술교육 분야의 인천지역 활동 단체 인터뷰

1. 일시 - 10월 18일 

2. 장소 - 거리의 미술 작업실

3. 참가 인원- 거리의 미술 대표(이진우), 구영은 연구 보조원             

4. 인터뷰 내용

(내용의 일부는 문맥에 맞추도록 수정하기도 하였고 빼기도 하였다)


구영은 : 선생님께서 지역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시게 된 동기와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진우: 나는 조선대학교 회화과 83학번인데, 복학했을 때가 1987년이었다. 

당시는 민주주의에 진전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에 관련한 사회적 문제들을 미술로 풀어보려는 차원으로 교내‘미술패’에 가입하였고 

미술패는 걸개그림, 민중미술, 해방미술 등을 시도 했었다. 

또한 학생 신분으로 민중미술에 대한 자기 공부에 전념했었다. 

당시 해방미술에 관한 책에서 다다이즘과 구성주의 등을 개혁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고, 

리얼리즘도 개혁적인 성격으로 출발한 것으로 보았다. 

1980년대만 하여도 멕시코 벽화 운동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었지만, 

점차 알아 갈수록 놀라운 면을 발견했다. 

또한 이 시기 일반대학생(미술 비전공 대학생: 약학대학생)을 대상으로 판화 교실을 실시했었다. 

미술학원에서 학생을 지도해 본 경험도 있었지만, 

이처럼 일반대학생을 대상으로 지도를 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구영은: 내용은 무슨 내용으로 수업하셨나요?


이진우: 판화는 매체로써 내용은 각자의 일상표현이었고, 공동 판화만 학내 문제를 가지고 작업했었다. 

그 당시에는 판화가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구영은: 당시 걸개그림이 유행했었죠?


이진우: 광주는 ‘홍성담’형이 유명했었다. 학교 선배이기도 했었으니까. 

내가 87년, 88년에 3학년, 4학년이었는데, 87년에는 6월 항쟁이 있었고, 

88년에는 통일과 관련하여 대학생들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고 

걸개그림은 대형집회의 배경으로 반드시 있어주는게 되었다. 


구영은: 고향이고 대학교를 나온 곳이 호남지방이셨는데, 어떤 이유로 인천에서 활동하시게 되었는지요?


이진우: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오게 되었다. 민미련(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활동을 서울에서 했었다. 

민미련이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 연합과 맥을 같이 하면서 연관된 미술 작업을 했었다. 

주로 집회 때 걸개그림과 포스터 작업이었다. 구로공단, 영등포지역의 노동자 파업이 있으면 

파업지원 미술작업도 하고 노동자 미술학교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인천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지금은 인천사람이다. 다만 야구는 한화를 응원한다.


구영은: 민미협과 민미련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이진우: 민미련은 활동가 중심이고 민미협은 작가중심이다. 

민미련은 좀 더 조직적으로 변혁운동의 하나로 미술운동을 자리매김한 단체였다. 요즘은 그런 단어 쓰지 않지만... 


구영은: 지역문화예술교육활동을 하시면서 현실 비판적 시각이라든가, 변혁 운동적 사고가 접목되는 지요?


이진우: 다른 것 같다. 나는 ‘나의 미술과 삶’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아침이면 인사 나누고,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누어 먹고 그런 것이다. 

그 안에서 살면서 ‘동네에 하나 있으면 좋을 법한 의사, 동네에 하나 있으면 좋을 법한 페인트칠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써. 

최근에 작업한 작업실 간판에도 그런 뜻을 담았다. 

‘마을에서 그림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런 뜻이다. 

거대한 그림이기보다는 동네에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허물없이 사는, 소통하는 공동체의 실현으로. 

‘미감 (美感)’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작업은 좀 더 폭이 넓어졌다. 


구영은:‘열우물길 프로젝트’ 얼마간 하셨는지요?


이진우: ‘열우물길 프로젝트’는 2002년도에 처음 하고 8차 프로젝트 이상 진행했다. 

올해 한 것은 이제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안 쓰기로 했다. 그냥 동네에서 하면 됐지... 

프로젝트를 했을때는 사람도 끌어 모으고 예산도 받고 그랬지만, 

이제 사람들은 끌어 모으지 않아도 오고, 홍보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적당한 사람이 와서 하게 되고, 

예산은 각자 자기 밥 값 가져오는 것으로 충당하고 페인트는 내 페인트를 사용하므로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홀가분하다. 프로젝트란 이름이 없으니까 자료집도 안내게 되었다. 

문화재단 지원금 받으면 책도 만들고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지원 받은 활동을  책으로 낸다는 것이 약간... 

그냥하면 되지. 오른손이 하는 일을 굳이 왼손이 알 필요 없다. 

이 동네에서 화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시 화실로써, 회합장소로써, 주민 파티 장소로 이용하며 살고 있다.


구영은: 이러한 생각은 장봉도에서도 마찬가지 이신가요?


이진우: 우리가 장봉도를 왜 하게 되었냐면, 재작년에 인천문화재단에서 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지원받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자료집비용을 받았는데, 자료집 비용으로 다른 일을 하라고 해서 혜림원의 미술수업으로 타일그리기를 해서, 

타일 벽화로 남기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4회간 수업을 진행하고, 주변도 벽화봉사활동단체와 함께 1박2일 벽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지금 ‘생명을 키우는 손, 예술의 마음’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생명을 키우는 손은 장봉도 혜림원 보호작업장 사람들을 뜻한다. 

장봉도 혜림원에는 보호작업장, 재활원, 요양원으로 세 부류의 시설이용자가 있다. 

보호작업장 사람들은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로, 고구마, 감자, 꽃 등을 재배한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생명을 키우는 손이고, 그 안에서 표현 하는 것은 예술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구영은: 지원금을 안받으시면 활동하시기 힘드시지 않나요?


이진우: 십정동과 같은 동네에서 벽화하는 것으로는 안 받아도 된다. 

그러나 장봉도는 거리가 있고 차비도 들고, 활동비가 필요하다.


구영은: 십정동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생각하시고 작업하시나요?


이진우: 지금 이 지역이 재개발로 인한 지장물 조사가 되고 있어서 

드러내고 무엇(벽화)을 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주거환경개선 여부와 관련 없이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장봉도 혜림원의 경우 자료집 만드는 대신 프로그램을 하니까, 

관계자들이 장봉도에 혜림원이 생긴 이후로 처음으로 미술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직원들도 미술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직원 중심으로 미술 프로그램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섬 공공 프로젝트를 인연으로 혜림원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이다. 

혜림원 보호작업장 사람들은 지적 장애가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라 

직원들이 아니라 이 보호작업장 사람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초창기(작년)에는 거리의 미술팀이 헤매었다. 보호작업장 사람들이 미술표현을 해본 경험이 없고, 

특수 학교 경험도 없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장봉도가 인천이지만. 예전에 옹진군은 경기도 소속이었기 때문에 부천의 혜림원생이 성인이 되면서 수용할 시설을 장봉도에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고함도 지르고 수업 진행이 힘들었지만 2달 정도 지나자  점차 좋아졌고, 

1년 정도 지나니까 웃기 시작했다. 혜림원 직원들도 이들이 변했음을 지적했다. 

미술이란 형태로 풀고 발산하고 새롭게 표현해 가는 것이 보람있다.


구영은: 수업 시 업무를 보조해 주시는 보조교사가 있나요?


이진우: 3명이 있다. 섬 시설 근무자는 24시간 근무하는 형태에 가깝다 보니, 

일요일 개념이 없이 평일에 돌아가며 쉬니까, 작년에는 보조교사가 중구난방이었다. 

평가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올해는 3명의 지정된 직원과 미술에 관심이 있는 직원 배정을 요청했다. 

지금은 효율적으로 호흡이 맞아서 괜찮다. 

작년에는 프로그램은 단순할 수 있지만 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업을 재밌게 했고, 

올해는 발표를 염두하고 수업을 한다. 작년에 혜림원에 있는 ‘나눔회관’에서 발표를 했더니, 

시설에 있는 사람들만 관람하더라도, 전시에 참여한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올해는 3회 전시를 목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장봉도 옹암 해수욕장 전망대를 활용해서 8월에 전시했고, 10월 전시는 등산객이 볼 수 있도록 선착장에 전시한다. 


구영은: 전시에 관련된 현수막 설치 및 그림 전시와 관련한 업무는 누가 하시나요? 


이진우: 같이 한다. 프로그램 참여자와 함께. 이들의 전시를 통한 성취감이 상당하다.


구영은: 지도 교사와의 유대를 형성하는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이진우: 오래 걸린다. 또한 자기표현의 방식을 터득하기 까지는 더 걸린다. 

초기에는 소리만 지르다가, 지금은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올해는 자존감을 찾는 작업을 하고, 내년에는 좀 더 심화된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올해 이젤 등의 미술 장비들을 구입했는데, 내년에는 야외스케치를 하고 싶다. 

그 중 몇은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


구영은: 프로그램 진행자는 선생님 외에 누구이며, 프로그램 참여자는 몇인가요?


이진우: 나 이외에 한명(썬파워)이고, 프로그램 참여자는 11명~13명이다. 

수업 마다 약간의 변동이 있다. 가령 치료받으러 간다던지... 

그렇지만 요일개념이 없은 이사람들이 목요일만큼은 안다고 한다. 혜림원 선생님은 ‘기막히게’알고 기다린다라고 하셨다. 


구영은: 장애인 대상 수업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면?


이진우: 수업인원은 적절하다. 보조 선생님도 있고.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특징과 개성이 외화되거나 발현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잘 하는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개별적으로 능력에 맞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혜림원에 수업을 갈 때면, 보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헤어짐은 언젠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 정주고 떼는 것이 힘들다. 

3년 이후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것은 안타깝다.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자체가 한정된 시설에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한다지만, 

더 많은 인원이 들어오고 더 많은 예산이 지원되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문화예술강사가 수입도 안 되는 시스템인데, 이런 문제까지 있으니까 안타깝다.


구영은: 문화예술교육에 임하는 단체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이진우: 사명감이 아니라, 이진우라는 한 작가가 작가로써 이러한 활동을 할 때, 

수채화를 매체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혜림원이든, 

어느 시설이든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것도 나의 미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양태로써. 나의 미술은 내가 해서 기쁜 것도 있고, 남에게 줘서 기쁜 것도 있고, 남에서 추동시켜서 기쁜 것도 있다. 

그게 다 나의 미술이다.


구영은: 그렇다면 작가의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시는 건가요?


이진우: 나는 그냥 이진우의 미술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이진우의 삶이다. 

경제적 문제만 빼면 재밌다. 수입은 적지만 말이다.


구영은: 개인으로 활동하는 예술강사와 비교하면 어떠신지요?


이진우: 단체들은 단일 프로젝트로 수입이 생기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구영은: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시다 보면 개인작업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선생님 어떠신지요?


이진우: 분화되어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럴 것이다. 나의 예술작업이란 것이 꼭 화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을 열심히 해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내일과 교육이 분화되어 있어서 일것이다. 

나는 다 이진우의 미술작업이다. 열심히 하면 이진우가 열심히 하는 것이다.


구영은: 그렇다면 선생님은 지금 활동을 만족하시나요? 


이진우: 즐겁다. 경제적인 것만 제외하고는 만족한 삶이다. 

그래서 장봉도를 갈 때면 너무 기쁘다. 다른 아쉬운 점은 장애인이 관련된 미술교육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지 못했다. 

독학 식으로 책은 많이 보는데 혼자 하다보니 어려움이 있다. 

장애인 교육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하면 연극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하는 사람도 있고, 

큰 틀에서는 이야기가 되지만, 미술의 심화된 이야기는 부족하다. 

매체 사용법 같은 연구 모임 등이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 책은 많은데, 개인 작업 위주이다. 공동작업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구영은: 선생님께서 경험을 바탕으로 써보시면 어떨까요? 


이진우: 내가 글을 쓰면 모든 글이 사적인 글로 변한다. 공적인 글도 사적인 것으로. 

일기같은 글은 잘 써도 공적 문서형 글은 잘 못쓴다.


구영은: 문화예술교육 활동가 선생님들이 지원사업 준비하실 때 공적 문서형 글을 쓰실 일이 많을 텐데요.


이진우: 예전에는 기획서 쓰는 방법을 교육했다고 하던데. 

사업계획서를 쓰는 것 자체도, 내마음을 기획서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렵다. 

팀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내일(10월 18일) 십정동 상정초등학교 부근 ‘미술로 안전한 학교길’ 벽화 작업이 있다. 

자발적으로 봉사자들이 모여서 부평구 자원봉사 센터에서 재료비만 받고 다른 지원금 없이 진행한다.


구영은: 이것은 어디서 지원하는 사업인가요?


이진우: 이건 사업이 아니고, ‘거리의 미술’ 우리 일이다.


구영은: 지역에서 벽화로 봉사 활동하는 일을 더러는 당연시하는 풍토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진우: ‘미술로 안전한 학교길’ 벽화그리기는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경우에는 괜찮다. 

그러나 동원형으로 관에서 기획을 하고, 자원봉사자를 끌어 모아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이다. 

손쉽게 동원하는 개념으로 자원 봉사자를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공공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교장선생님이 벽화를 자원봉사로 요청하는 경우 불편함을 느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장애인 시설이나, 장애인 학급이라면 벽화 자원봉사를 할 용의가 있다.


구영은: 인천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진우: ‘이게 계속 될까?’라는 의문이 가장 힘들다. 

내가 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2006년부터 노인 요양시설에서 미술 프로그램을 했었다. 

그런데 2~3년 하다가 지원금이 끊어져서 그만두었다. 

정부의 정권별로 노인이 각광을 받고, 아동이 각광을 받고... 


구영은: 문화예술교육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진우: 기존에 몸으로 부딪쳐서 쌓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단지 교육을 몇 시간 받고 자격증을 주고 혜택을 준다는 것은 몹시 모욕적이고 기분이 나쁘다. 


구영은: 선생님께서는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받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이진우: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받으라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문화예술교육 강사로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담보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나는 문화예술 강사라기보다는 미술가이다. 미술의 활동의 한 분야로 문화예술교육이다.


구영은: 인천지역의 문화예술교육 활동가 분들이 함께 모이셔서 지역 문화예술교육 발전을 도모하면 좋을 텐데요.


이진우: 지역의 문화예술교육단체들이 각자 영역에서 배타성을 갖고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이든 어디든 마찬가지다. 

예술강사 노조가 생기고 환경이 더 좋아지길 바라지만 내가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언제 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영은: 선생님의 문화예술교육과 예술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이진우: 행복과 즐거움이다. 행복 찾기의 일환으로써의 작업이다. 

2008년 ‘찾아가는 문화 활동’으로 협성원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했었다. 

이후 자원 봉사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번 인연을 맺으니까 정이 들어서 현재까지 가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노인복지의 미술교육사업에 치중 덕화노인요양원, 사할린동포 복지회관, 

소망의집(중증장애 시설)에서 3년 간  ‘찾아가는 문화활동’을 했었다. 

이전에 이 시설들은 다 벽화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어서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이다.

노인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들에게 문화예술활동은 소중한 것이다. 

요사이 노인 요양원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을 사회복지 협의회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아르떼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노인 요양원들이 모른다. 기관정보가 더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독거노인 지원도 요양보호사 이외에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지자체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되었으면 좋겠다. 

노인복지 시설은 문화예술교육을 하기 힘든 곳이다. 

노인들이 인생의 쇠퇴기에 있기 때문에 수업에서 성과도 많지 않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주기적으로 있어서 이별을 늘 염두해야해서 힘들다.


구영은: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이진우: 문화예술교육 단체가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원받았던 프로그램을 끊는 것은 심적으로 무척 힘들다. 

이진우의 미술로 문화예술교육을 계속 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안정된다면 활동하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나의 성향 상 재개발 동네에서 사람들과 사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재개발 동네, 예전에 ‘도화시장’프로젝트를 했을 때, 없어지는 그 동네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우리가 잠시했던 프로젝트가 다였다. 

내가 그곳 도화시장 3층 건물에서 작업실을 오래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이후에 화실을 옮긴 곳이 이 십정동이고 이 또한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이다. 

이곳을 나가게 되면 부평5동 쪽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지역을 기반으로 동네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미술을 한다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