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문학과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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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이라는 말
더 덮인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사평역에서
광주로 유학하던 시절에는
화순 어디쯤에 사평이라는 지명이 있어서
버스가 사평에서도 섰기에
거기에 사평역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주 남평면에 있는 남평역이 모델이라고 한다
남평은 고딩시절 우리화실에서 물놀이갈때
도착했던 기차역이었는데
하긴 그때는 고딩시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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