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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막일 현장 뛰어든 미술 작가들(2006.3.21)

왕거미지누 2006. 10. 8. 11:00

막일 현장 뛰어든 미술 작가들



'개칠공' 한국화가 정세학씨
“‘가방끈’도 작가의식도 필요없어요. 공사판에서는 돈 벌려고 칠하는 ‘업자’일 뿐이죠.”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 정세학(45)씨의 생업은 아파트, 상가 등의 신축 건물 외벽에 문양을 그리는 화공이다. 19일 오후 서울 봉천 9동 수플러스 상가 신축건물 지하 주차장. 그는 ‘뼁키통’을 든 채 먼지 마셔가며 벽에 평붓으로 열심히 개칠을 하고 있었다. 전선 감개 위에 놓아둔 붓통과 수평자, 안료 든 페트 병을 번갈아 들고서 시공사가 내어준 디자인 문자 도안을 주문한 색깔과 선 대로 맞춰 그린다. “작가의 개성 따위를 복잡하게 생각하면 판에서 버틸 수 없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화두를 외는 선승처럼 오직 지정된 색깔과 선들을 되풀이해 칠하고 또 덧칠할 뿐이다.

같은 붓질이건만 아틀리에(화실)와 달리 막노동판은 냉혹한 금전의 논리가 지배한다. 화실처럼 느긋이 작업하면 욕먹고 내쫓기기 십상이다. 페인트밥 먹고 살려면 주문자 요구에 맞춰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그려주고 다른 현장으로 쏜살같이 ‘떠야’ 돈을 벌 수 있다. 페인트의 여섯가지 기본색을 섞어 주문에 맞는 색상을 맞추고, 공간 규모에 걸맞게 도안문양을 키워 그리는 것은 여간한 내공 없이는 어렵다. 92년 대학원 졸업 뒤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전국 아파트 공사장을 돌면서 어깨너머로 도장 기술을 배웠다. 지금도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힘들게 일하지만 “맘 편하고, 자유롭고, 누구나 평등하게 일해서 좋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파주에서 개인전을 연 정씨의 그림은 뜻밖에도 선적 분위기가 물씬한 푸른 톤의 명상적 작품이다.

“일하는 현장자체가 영감의 밭이죠. 화가란 존재감을 아예 잊고 칠에 몰두하다보면 지지고 볶는 인간 관계 속에 놓인 나와 세상의 참모습이 보입니다. 비움의 미학을 배우는 거죠. 제 그림도 그렇습니다.”

고구마 풀빵 굽는 최진기씨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남구 대치동 먹자골목에서 ‘아이러브 고구마’란 상호를 달고 풀빵 장사를 해온 작가 최진기(32)씨. 서울대 대학원을 나와 대안공간 스튜디오 작업과 해외연수를 마친 이 엘리트 작가는 ‘작업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세상 체험의 놀라움’을 느끼며 신종 풀빵 ‘고구마짱’을 판다.

“신나요. 매일 다양한 손님들이 들려주는 세상사 듣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죠. 저도 사장이잖아요. ”

오전 11시30분 포장마차를 끌고 나와 밤 10시30분까지 6개의 틀이 있는 풀빵기계에서 고구마 모양 풀빵을 구워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천차만별이다. 오후에 부시시 일어나 간식 사러 오는 ‘룸싸롱 언니들’과 웨이터, 깍두기 형님(조폭), 증권으로 재산을 날렸다는 넥타이 행상 아줌마, 손가락에 금반지를 덕지덕지 낀 찜질방 손님 등과 부대끼면서 ‘세상에 사연없고 꿈없는 사람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됐다고 한다. 눈에 띄는 반경 안에 동일 업종 영업은 절대 막아야하며, 팔리지 않아도 일찍 나와 행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라는 노점상의 생존 법칙도 배웠다. 비닐이나 일상사물을 주물러 색다른 동물이나 사람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최씨 특유의 작업들은 장사하면서 착안한 것들이 많다.

“풀빵 굽다 영감이 퍼뜩 떠오르면 집사람에게 맡겨놓고 작업실로 뛰어가 후다닥 작품을 만들죠. 밑바닥 일이라지만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작업의 원천이 됩니다.”

개인전(22일~4월3일 쌈지갤러리) 준비에 1달여간 바빴지만, 장사를 멈춘 적은 없다. 미국 뉴욕 화랑에 계약작가로 뽑혀 다음달 미국에 건너가는 그는 “몸을 때워 돈을 벌면서, 금전의 가치를 성찰하게 됐다”며 “현지에서도 노점상을 계속 할 생각”이라고 했다.

떡볶이 장사 접은 이중재씨

밑바닥 생업이 성공으로만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국내 웹아트 1세대 작가인 이중재(41)씨는 지난 11월부터 이대 정문 부근 골목길에서 ‘불량 떡볶이’집을 열었지만 지난달 문을 닫았다. 요리 실력과 동료작가들의 자투리 전시 등을 업고 손님을 꽤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지만, 점포들 뒷문만 있는 골목길에는 손님들이 오지 않았다. 업소를 알리는 데만 1년 정도의 투자가 더 필요한 사실을 간과했다가 큰 적자를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정체된 작업의 돌파구로 시작한 건데, 어떤 일이건 악착같은 근성이 있어야한다는 뼈저린 교훈부터 얻게 됐다”고 했다.

아파트 전기실의 이진우씨

인천의 아파트 전기관리실에서 일하면서 도시벽화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 이진우(43)씨는 “현장 생업이 예술 작업에 무조건 긍정적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며 “평소 가치관과 주제의식에 따라 생업과 작업이 절연되거나 더욱 밀접하게 만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젊은 피’들이 대접받는 요즘 미술판이지만, 그 언저리에는 이들처럼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작업의 터전을 일구는 청년 작가들도 많다. 막노동판, 노점상 등의 현장에서 푼돈을 벌다보면 작업실 속 세상이 얼마나 비좁았는지 실감한다고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사실 미술사에서 생계를 위해 험궂은 생업에 매달렸던 예술가들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요즘 작가들의 생활 현장 취업을 단순 밥벌이 차원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기획자 김준기씨는 “팔리는 상품으로 자기 작업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더욱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며 “작품에 현실의 온기를 불어넣는 발판으로서 스스럼 없는 선택을 하는 셈”이라고 분석한다.

화랑가의 젊은 작가 모시기 바람과 대비되는 밑바닥 취업은 국내 예술가의 열악한 복지 현실과 순수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의식 등도 함축한다. 편견을 걷어내면, 건전한 생업 체험은 한국 현대미술의 사회적 정체성과 다원성을 떠받치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10여년 간 공사판 목수로 일했던 중견작가 김을씨는 “작품과 생업을 같이하는 것은 강한 자신감을 심어준다”면서 “몸을 때워 세상과 접속하는 행위야말로 상상력의 저변을 넓히는 미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006년 3월 21일자 한겨레신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