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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 인천문화읽기-부평구 열우물 벽화마을 색입은 달동네 '소나기'단비

왕거미지누 2016. 3. 21. 23:00

[인천문화읽기-부평구 열우물 벽화마을] 

色입은 달동네 '소나기' 단비

영화·드라마 촬영지 부상 … 벽화마을 유명세
나눔문화 캠페인 일환 '사랑방'에 동네 활기

2016년 03월 21일 00:05 월요일 

[인천일보 원문보기: 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698801]


'벽화마을'로 잘 알려진 십정동 '열우물 마을'은 인천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하나다. 

열 개의 우물이 있어 열우물이라 불렸다는 이곳은 

지난 25년간 개발이 지연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희망고문'을 겪었다.   

최근에서야 주거환경개선 사업인 '뉴스테이'에 본격적으로 지정된 열우물 마을은 

새로운 변신을 앞두고 있다.  

 

정확한 개발 추진 시기를 알 수 없는 날들 속에서 회색빛이 돼버린 동네에 

벽화로 색을 입히며 활기를 되찾고 따뜻함으로 가득한 '소나기'에 모여 

서로 간의 소통을 꾸준히 이어온 열우물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랜 기다림 '개발'  

"그 재개발한다는 얘기 들었지? 이번에는 하는 건가 모르겠네."

"글쎄 또 모르지 그거야 어떻게 될지." 

 

열우물의 한 슈퍼 앞에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 최근 들려오는 개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 개발은 오랜 기다림과 실망이 뒤섞인 단어로 다가온다. 

개발을 이유로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열우물에 3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가스도 들어오지 않고 

기름 배달이 어려운 달동네에 사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토로했다.  

"동네 화장실 대부분은 요즘 보기 드문 재래식이에요. 

화장실 한 번 고치려면 3개월은 기다려야 했는데 참 힘들었죠. 

벽화마을로 동네가 알려지면서 관광지나 볼거리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보기 좋지만 여기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잘 모를거예요."

 

개발 이야기가 나오면서 집을 마음대로 수리하는 것에 제약을 받았다. 

예전에는 구청의 눈초리를 피해 늦은 밤 집 위에 비닐을 씌어두고 몰래 고치는 집들도 있었다.

 

"20년 넘게 개발 이야기만 떠돌고 제대로 진행된 게 없으니 

동네는 계속 낙후될 수 밖에 없었고 자체적인 개발도 어려웠어요." 

 

그는 동네가 뉴스테이 사업에 지정된 것이 반갑다며 

이곳에서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기대를 전했다. 

 

▲열우물 사랑방 '소나기' 


▲ '소중한 나눔 이야기 사랑방'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어르신들.

 

'소중한 나눔 이야기 사랑방'의 줄인 말 '소나기'는 열우물의 사랑방이다. 

이름만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곳은 2년 전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KBS가 함께한 

나눔문화 캠페인의 도움을 받아 마련됐다. 

오랜 시간 방치된 빈 가게가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하자 조용했던 동네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생기기 전만 해도 동네에 마땅히 친목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주차장이나 나무 밑이 어르신들의 유일한 쉼터였다. 

근처 경로당에 다니고 싶어도 회원을 모집해 매달 회비를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형편이 넉넉지 못한 어르신들이 드나들기 쉽지 않았다.

 

소나기는 한 달에 두 번 동네 성당에서 가져다주는 반찬과 후원을 통해 받는 쌀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청소와 관리는 소나기를 내 집처럼 생각하는 어르신들 덕분에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맛있는 반찬이 없어도 점심시간이면 소나기는 항상 동네 사람들로 북적인다. 

홀로 방 안에 앉아 쓸쓸히 수저를 드는것 보단 오랜 세월 서로 함께한 

가족같은 이웃들과 식사를 하는 시간이 어르신들의 유일한 낙이다.  

 

옹기종기 모여 소나기를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은 여기는 누구든지 

지나가다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며 밥 한 끼 먹고 갈 것을 권한다. 

 

소나기의 큰언니 오대선 할머니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누구보다 

우렁차고 씩씩한 성격으로 밥상에 수저를 척척 놓으며 매일 점심 식사를 챙긴다. 

여러 지역을 거쳐 열우물에 자리 잡은지 어느새 40년이 됐다는 할머니는 

개발이 시작되면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이다. 

새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나이가 많아 아파트가 다 지어지는 날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할머니의 말에서 세월의 덧없음과 씁쓸함이 느껴진다. 

 

열우물에 산지 37년이 된 김선례 할머니는 이곳에 처음 왔던 때가 생생하다. 

고향을 떠나 수많은 동네 중 열우물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전에 살던 시골과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3만5000원에 39.6㎡짜리 집을 얻어 가족들과 다 함께 살았다.  

 

가장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수도가 없어 매일 밤 8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물을 퍼나른 일이다. 

결국 힘이 들어 집 안에 수도를 들인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할머니에게 

낯선 동네였던 열우물은 어느새 유일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지난 겨울 날씨가 추워 내부 천장에 물이 어는 바람에 전기장판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소나기를 향한다. 

오고 가는 정 속에 담긴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림으로 행복한 마을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다채롭게 수놓은 벽화들은 열우물의 상징이다. 

외부인들에게 열우물 벽화마을로 알려지면서 영화나 드라마 등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지만 

벽화는 단순히 동네를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소나기 맞은편에 위치한 거미화실은 미술수업이 이뤄지는 곳이자 

열우물의 그림쟁이 이진우씨의 작업실이다. 

95년도에 열우물로 이사 온 그는 전철역이 가깝고 방값이 저렴해 이 곳을 선택했다. 

현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작업실만 열우물에 남겨 둔 상황이다. 

 

그는 처음 열우물에 왔을 때 느낌을 도시지만 시골 같은 분위기가 강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동네에는 대부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고 

당시 그들의 임금은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건설경기가 나빠져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한순간에 동네가 피폐해졌다. 

1997년 열우물 일대는 '십정2지구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됐지만 IMF로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제대로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다. 결국 2002년에 지구 지정이 해제되고 동네는 혼란에 빠졌다.

 

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집이 낡거나 망가져도 쉽사리 수리를 할 수 없는데 

개발이 무산되자 동네에 급하게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덮은 파란색 지붕들이 늘어났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진우씨는 열우물에 사는 사람으로써 

동네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던중 벽화를 떠올렸다. 

하루라도 빨리 침체된 분위기를 벗어나 동네의 활기를 되찾게 하고 싶었다. 


원래 그는 벽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1997년도에 동네에 있는 해님공부방에 작게 벽화를 그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벽화 그리기 참여자를 모집해 시작한 것은 2002년도 4월이다.  

근처 교회, 성당, 새마을부녀회, 자율방범대 등에서 봉사활동으로 벽화 그리기에 참여했고 

점점 규모가 커져 일 년에 400명이 참여하는 '열우물길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벽화를 그리기 위해 집집마다 동의서를 받으러 다녔다. 반대하는 집들도 있는 반면에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집에서 벽화를 그려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주말마다 조금씩 그렸던 벽화는 동네를 환하게 만들었고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열우물 벽화마을이 되었다.

 

열우물은 고갯마루 너머에만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상황에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은 아니라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오랜시간 동네를 지켜온 어르신들만 계실뿐이다. 

 

이진우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열우물에 벽화를 그리도록 했던 것처럼 

동네 어르신들에게 미술을 하도록 부추겼다. 

멀리 나가 취미나 여가생활을 즐기기 어려운 어르신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오전 소나기에서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기를 어려워하던 어르신들이 집에 있는 사물과 

좋아하는 사람을 척척 그려내고 마을 축제 미술 작품 전시에도 참여하셨다. 

그는 동네에 계속 남아있는 날까지 미술수업을 통해 

좀 더 많은 어르신들과 함께 그분들의 삶과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낼 예정이다. 


/글·사진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