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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미술-원고] 환경미술과 인천 (1999)

왕거미지누 2006. 10. 6. 00:40
아래의 글은 인천미술협의회에서 발간하는 미술지 황해미술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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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술과 인천
                               이진우


거리의 풍경-간판

거리에 난립한 간판과 여성들의 짙은 화장이 엄습했다.--미국에서 살다 귀국한 사람이 들려준
귀국인상이다. 최근 서울의 난장판 간판을 전한 한국일보의 수도권리포트를 보면 절제와 조화
를 잃어버린 거리의 간판이 공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한때 외국매스컴이 간판이 우후죽순
처럼 붙은 서울거리를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곧잘 묘사했다. 그러나 거리의 간판숲을 유심히 들
여다 보면 우리의 사회심리가 그대로 압축 표현된 느낌이 든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이자 개성이다. 서울을 보자. 주변 자연환경은 아름답지만 건물과 도로가 도
시미학을 뒷받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간판이 무질서하게 난립하고 있으니 도시전
체가 뒷골목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깔도 개성도 없는 분위기가 전국을 덮어가고 있다. 간판
이 이런 몰 개성의 도시를 만드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1)

인천의 도심지역은 간판세상인가. 부평,주안, 동인천등 인천 도심권의 간판공해는 이제 참을수 있는
한계를 넘나들고 있다. 도시미관과 시민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것들은
차라리 시각공해를 넘어선 폭력에 가깝게 여겨질 지경이다.
주안역 광장너머 이른바 카페골목이라고 불리는 상업지역, 간판이 덕지덕지 나붙어 있고 그것도
모자라 창문에 썬팅광고와 포스터까지 해서 온통 광고판이며 사람이 다녀야할 거리에는 돌출간판이
시비걸 듯 서있다. 간판의 색상도 갈수록 현란해지고 크기도 대형화하고 있다. 아무리 잘지은 건물도
본래 건물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빨간색 바탕에 흰글씨, 노란색 바탕에 검정글씨 등 더욱 강하게
튀어나오는 간판경쟁만이 존재한다. 필자가 알고있는 동암의 먹자골목 모호프집도 파나풀렉스
간판만 4개나 된다. 간판이 정신없이 난립해 있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강하게 팍!! 자극적이여야만
손님이 오는데 어떻하냐는 가게 주인의 반문이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 상가에 까지 퍼져나갔으며 대부분의 아파트 상가가 정리되지 않은
들쭉날쭉한 간판으로 도배칠되어 있음을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다.

거리의 풍경-아파트

도시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편리하도록 여러 가지 요소와 기능을 갖춘 총체적인 집합체이
다. 다시말해서 도시는 사람, 운송 수단, 상업 공간, 문화 공간, 휴식 공간, 산, 강, 그리고 바다
등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아름
다움을 제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도시를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도시가
인간에게 단지 경제적인 기능만을 하고 문화적인 요소가 결핍되었을 때, 도시로서의 기능을 충
실히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도시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외
면당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2)

인천의 시민 중 절반 이상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통계가 있다. 예전의 주택가라 함은 거주인구의
대다수가 생활했던 공간으로서 주택가를 의미하였지만 지금에선 아파트단지라고 함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시민 대다수의 거주공간으로서 아파트의 환경(미술)은 어떤가. 도시속의 아파트의 기능은
무엇일까? 1차적인 기능은 생활상의 편리함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고 2차적인 기능은 시각적으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1차적 기능에만 중시하여 세운 결과 현재의 아파트 단지들은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으며 결국 개개의 삶과 경제를 일정부분 공유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아파트는 시공회사에서 주거공간과 건축색채를
미리 지정하여 시공하는 방식이므로 입주민의 환경(미술)에 대한 의견제시나 참여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덕분에 입주자에게 고압적인 시공회사의 아파트일수록 색채환경이 불성실하거나
엉망이다는 실로 날카로운 지적이 있다. 유명할수록 대기업일수록 그렇고 H회사의 아파트
색채환경이 특히 그렇다고 한다. 물론 외부도장 색채나 수퍼그래픽만으로 모든 것을 평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경기도내에서......과천시가......획일화된 아파트 단지의 색채변화 및 관리를 통해 전 시가지 미관
을 유지 하기 위해 지난해 관내 별양동 주공아파트 4단지 10개동과 5단지 7개동 34개 벽면에
대한 색채그래픽 지원사업비 명목으로 1억 4천여만원을 지원했다.
이와 관련 경기도는 지난해 12월 과천시에 대한 감사에서 공동주택색채화 사업은 현행법에 위
배되는 지원으로 지적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시는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달부터 3천6백여만원을 들여 관내 부림동 주공아파
트 9단지 17개동 34면에 대한 색채그래픽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시는 관내 12개 아파트 단지 색채화 사업지원을 위해 지난 94, 95년 두차례에 걸쳐 6천
여만원을 들여 모 환경미술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기본 및 실시설계를 완료했다.*3)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도시 리용의 한 아파트 단지 많은 벽면에 벽화가 그려졌다. 88년 시작된
이래 24개의 벽면에 그려진 수퍼그래픽은 10년이 지난 98년에까지 작업이 진행, 완료되었다.
'도시미술관 토니 가르니에'라는 프로젝트로서 수퍼그래픽이 진행된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주공
저층아파트(6층에 엘리베이터가 없다)에 해당된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와 시, 우체국, 은행,
기업들의 후원으로 벽화 전문단체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매년 수천명이 벽화(수퍼그래픽)을
보기위해 리용을 방문한다고 한다. 하나의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작업하여 완성하였다.
이는 정부와 시와 사회문화 전반이 든든한 후원역할을 맡아 했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위 과천시의 주택색채와 사업에 대한 인천일보 기사에서 보여지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나
자치단체가 권장하여야 할 사업들이 오히려 억압되고 있는 섬뜩한 현실이다. 법규에 위배되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그 법규가 올바른 것인지 시의적절한 것인지는 알턱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주공이라면 아마도 그 6층의 아파트를 헐고 거기에 고층아파트를 세우면 되겠구나,
좀 남는 장사가 되겠구나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을 것이었다.
과천시의 공동주택 색채화 사업은 상부기관의 감사지적 사항이라는 어줍잖은 처사만 제외하면
적절하고 실제 진행된 결과는 긍정적이다고 말할수 있겠다. 아울러 이러한 역할은 각 자치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모범인 것이다.

거리의 풍경-조각상

초등학교 시절 필자의 학교는 들판 한가운데 있었고 필자가 7회 졸업생일만큼 신생학교였으므로 2층
건물을 제외하고는 나무하나 큰게 없었다. 소나무도 학생이었던 우리들이 직접 산에 가서 캐어다가
심었을 정도였다. 교사 앞 화단에는 4학년 땐가 이승복 동상이 생겼다. 우리는 그 동상 밑에서
공산당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그 조각상을 올려다 보았으며 4학년 2학기말 무폅 하얀 석고상
책읽는 소녀가 학교 뒤쪽 양어장 옆 화단 높은데 앉게 되었고, 5학년 때는 성웅 이순신장군의
동상과 거북선의 모형물이 이승복동상의 얼마 멀지않는 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상이
학교에 세워지던 날, 나역시 반드시 일본을 무찌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조각상이란
이런 것이었다. 공산당을 미워하거나 일본을 무찌르거나 독서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일종의 은근한
강요였다.
오늘날 자유공원에 가면 또다시 그런 조각상이 있다. 인천의 젊은 시절 그 누구나가 한번쯤은
사진을 박았을 머카서(MacArthur)동상, 거기에 한미수호 백주년 기념탑, 책읽는 소녀가 있었던
자리에(확실하진 않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지금이야 장수동 인천대공원에 조각공원이 있지만
십년 전만 하여도 조각상이 생각나는 공원은 그래도 자유공원이었다. 머카서 동상은 언제나 인천의
내항을 바라다 보고 있으며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은 하늘을 찌르고 거기다 자유의 여신상을 세운
자유공원은 완전히 미국공원이다. 다시한번 자유공원을 생각해 보자. 아니 가보자. 머카서와 백주년
기념탑, 여신상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보자. 얼마나 공원다운 공원인가.

환경조각의 역할은 획일적인 형태의 건축물들이 형성하는 환경 속에서 대중의 생활과 인간성
회복을 위하여 예술적인 조형물이 입체적으로 개입하여 새로운 도시 공간의 표정을 창조하는
데 있으며, 시민으로 하여금 그들의 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도시가 갖고 있는 제 문제의
해결을 보다 효율적인 것으로 모색할 수 있는 기능성을 가지며, 단순 목적으로서의 장식이나
미화를 떠나 근본적으로 도시 생활에 영향을 준다. 이렇듯 도시에 설치된 환경조각은 도시 건
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감상자가 예술적 감각을 느끼고, 정서적 안정화 함께 주변환경을 아름답
게 증진하려는 의도 아래 세워진 구조물이다.
환경조각은 예술적 순수성을 가지고 주변 공간과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도시민의 정서에 위
배되지 않는 내용을 지니도록 연구/제작되어야 한다. *4)

어디쯤이라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일 혼하게 보아온 것이 모자상이다. 주제상으로 이의를 제
기할 수 없는 내용이라 그만큼 할 이야기도 별로 없는 것이 바로 모성을 대상화시킨 조형물이
다. 익숙한 대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우리가 무심코 보아온 대상을 새롭게 환기시
키는 역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안이한 발상으로 무난한 형식을 빌어 제작한 조형물은 오히려
일상에 지루함만을 줄 뿐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놓여져 있는 것은 기하학적 형태의 철제조형물이다. 미의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없이 어디서 많이 본듯한 너무나 익숙하여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
는 그런 작품이 대부분이다. 작가의 조형적 실험이 대중의 미의식을 일깨우는 형태가 아니라
주관적 미적 체험의 자기 과시에 불과하다면, 예술과 대중은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5)

우리는 길에서 어느 빌딩 앞에 초라하게 놓여진 조형물을 만난 적이 많지만 그게 그거고 하여 그
누구도 그 조형물을 기억하지 못한다. 6층 이상의 건축물에는 1% 법이 적용되어서 그저 조형물을
설치하였을 따름이지 건축주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건축주의 이러한 입장과 조각가의
안일한 태도가 맞물려 무의미한 조형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환경조각은 조각가의 작품을 단지
외부공간으로 옮겨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조화를 중심에 두고 작업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거리의 풍경-방음벽

소리만 잡던 방음시설이 시선까지 사로 잡는다..... 설치되는 방음벽은 종전 회색의 칙칙한 분위
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질과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방음벽면에 숲과 나무를 그리거나 인천을 상징하는 바다, 배, 항구 등의 자연친화적인 풍경이
모자이크로 모자이크로 그려진다. *6)

학교, 도로가에 있는 학교는 예외없이 높다란 방음벽 시설이 되어있다. 학교 내부의 모습을 논외로
친다 해도 도로에 면한 방음벽의 모습은 마치 수용소를 연상시키기 알맞다. 그 대표적인 학교가
원통로를 면하고 있는 인천고등학교이다. '인고, 인고' 하며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야길 많이
듣지만 그들도 그 벽앞에서만은 자랑스러워 하지 않을 터다.
방음벽, 도로가의 아파트 단지 방음벽, 고속도로 변의 주택가를 끼고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회색조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회색조의 벽면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산곡동 대림아파트 벽화가 방음벽까지
연계되어 그려진 벽화이고 안양의 1번국도 옆 대우아파트 방음벽에 그려진 벽화와 서울 답십리
신답초등학교의 방음벽에 그려진 그림 '우리세상'은 그 규모에 걸맞게 잘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거리의 풍경-벽화

살아있는 역사책 '벽화의 도시'
캐나다 밴쿠버섬 남쪽 끝에 있는 도시인 빅토리아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토템조각상으로 이름난 '토템 폴의 도시' 덩컨이 나온다. 이 도시를 지나가면 '벽화의 도시' 슈마
이너스가 있다. 지난 여름 한차례 스쳐 지나가듯 보고만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올 봄 다시금
친구들과 함께 그 곳에 들렀다.
지난 82년 벽화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슈마이너스는 수십년 동안 생계의 수단이었던 벌목사
업이 퇴락하면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폐촌이었다. 그러다 시가 주도한 벽화도시 프로젝트가
성공해 이제는 한 해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몰려드는 명소로 거듭났다.
마을 입구 대형 목판 조각물에 새겨진 '큰 일을 해낸 작은 마을'이라는 문구가 슈마이너스 사람
들의 그런 자긍심을 말해 준다.
느린 걸음으로도 마을 전체를 살피는데 30분이 채 안 걸릴 정도의 작은 도시에는 모두 32개의
벽화들이 고루 퍼져 있었다. 50년대 주류판매 가게 모습, 1883년 첫 학교 모습, 100년 전 마을
풍경, 1948년 벌목의 거리, 심지어 일본계 캐나다인이 그린 기모노 입은 여성들의 모습에 이르
기까지 소박한 슈마이너스의 역사가 건물 벽돌에 하나하나 기록돼 있었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금세 건물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목재 운송용 기차, 뿌앙 소리를 내
며 바로 눈 앞에서 항해하는 듯한 선박, 신록이 우거진 1910년 슈마이너스항의 고즈넉한 풍경,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옛날의 잡화상, 그림의 바탕이 된 3층 높이의 기다란 벽을 무너뜨릴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인 거목을 도끼로 찍는 노동자들의 모습, 무엇보다 빛나는 눈
속에 캐나다의 역사를 담고 있는 듯한 원주민들의 초상화가 내 발길을 오랫동안 그들 앞에 묶
어두었다.
캐나다 각지에 뻗어있는 슈마이너스 출신 화가들이 주축이 돼 과거를 현재로 옮겨놓은 수십 점
의 벽화들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역사책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책의 기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
다. *7)

'꽃거리를 아십니까'
회색 콘크리트 숲 사이에 싱그러운 꽃향기가 넘쳐나고 있다.....도심의 꽃거리 작업은 지난 2월
부터 공공근로사업으로 시작된 부평 아름답게 가꾸기 운동의 일환. 한달 여 공공근로자들의 세
심한 칠 작업 끝에 최근 그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주민들은 '삭막하기만 한 도심속에 꽃밭이
생긴 것 같아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고 입을 모은다.
부평구청이 추진하고 있는 '꽃거리' 작업에는 전직 페인트공, 간판제작자, 벽화전문가들과 공공
근로자 43명이 참여하고 있다.
가장 큰 규모의 벽화는 부평도서관 옆 담벼락(함봉산 옹벽) 6백여 미터에 펼쳐지는 '인천의 역
사 그림여행'이다. 높이 2.8미터에 달하는 이 담장에는 선사시대에서부터 개화기, 현재에 이르는
인천의 역사가 한눈에 조망된다.
넓게는 단군 할아버지의 개국과 좁게는 인천의 옛 이름인 '미추홀'마을의 성립, 서해안 시대의
중심이 될 미래인천의 모습까지 그림으로 담게된다. 또 길이 1백미터에 높이가 8미터나 되는
마곡초등학교 담장에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담기게 된다.
'꽃거리'의 전체기획과 구상, 도안은 '벽화팀'이 맡고 있다. 실직의 아픔을 딛고 아름다운 부평가
꾸기에 떨치고 나선 이들의 정성스런 붓 작업은 이미 부평사람들에게도 알음알음 알려진 상태다.
부평의 새명물 '꽃거리'. 꽃밭을 꾸미고 있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 모두 부평사람들이다. 그
들의 모습에서 칙칙한 그림자라고는 찾아볼수 없다. 표정마다 화사한 봄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8)

의왕시 곳곳의 옹벽들이 벽화로 장식돼 거리환경이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시는 지난달부터 공공근로사업 특수시책의 일환으로 관내 주민과 차량통행이 빈번한 지역 옹벽
5개소를 1차로 선정해 오는 12월까지 벽화그리기를 추진하고 2000년에도 2차로 계속 추진할
계획으로 후보지를 선정했다.
이번 벽화그리기에는 관내 계원조형예술대학 디자인 계통 졸업자 11명으로 전문팀을 구성, 내
손동 놀이터 및 민방위교육장에 벽화의 예술성과 후보지에 적합한 주제를 선정하고 시민들의
이해를 돕게 했다. 벽화그리기 후보지로 부곡이동고개옹벽에는 한국의 정서라는 주제로 '한국
인'을 선정하는 각 장소별로 주제를 정해 벽화를 그리게 된다.
시는 '이번 벽화그리기로 인해 거리가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서 생동감 있는 벽으로 탈바꿈, 시
민 모두에게 깨끗하고 문화적인 도시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9)

필자는 부평구청에서 추진하는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인 벽화그리기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원통로 함봉산 옹벽에 '인천의 역사 그림여행'을 기획 제작하는데 참여하여 6월 현재 70%정도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부평구청은 벽화제작이 '벽화를 이용한 도시미화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공근로사업
인력과 함께 넓은 축벽과 담장에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그림을 그려 도시미관을 살리고
도시민의 정서를 순화하는 등의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원통로 벽화 '인천의 역사 그림여행' 제작에 참여중인 인천조형연구소 회원들은 벽화제작의
목적으로 첫째, 회색콘크리트 벽면에 계획된 색상으로 도화 도색하여 기존의 몰개성적인 벽면에
살아 생기 있는 얼굴을 부여하는 것이며 둘째, 도벽에 인천의 역사를 선사시대에서 백제로 시작되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현재와 미래까지 포함하여 형상화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인천의 역사를 인식케 하고 인천에 대한 역사성과 자긍심을 부여케 하며 셋째, 벽면에 지역특성과
조화를 이루는 벽화를 제작하여 부평구에 대한 문화적 이미지를 갖게 하며 그리고
공공근로사업으로서의 실업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한다.
공공근로사업으로서 벽화의 활용은 부평구만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수구에서 진행중이며
앞서의 기사처럼 의왕시와 그리고 광주 부산 서울 등 많은 곳에서 제작 중에 있다. 즉 벽화의 제작은
지금 전국적 진행상황인 것이다.
왜 갑자기 많은 벽화가 그려지는가?
물론 IMF가 몰고 온 고실업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연유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 전반에서 문화적 인식이 예전과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실업대책의 하나로 진행 제작되지만
이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공무원들의 문화적 인식자체가 '옛날의 공무원(?)'과는 너무도 다르다.
문화를 시정에 반영하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의 방법적 변화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부평구의 벽화그리기 또한 실업대책을 활용한 문화적 정체성 정립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벽화팀'은 부평구의 공무원의 헌신적인 열정과 함께 하는 벽화전문가들의 전문적 열성이 하나로
뭉쳐 보다 생기있는 도시얼굴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며 원통로 벽화 뿐 만 아니라 산곡동
대림아파트 벽화, 마곡초등학교 벽화, 산곡동 천주교회 벽화 등이 다 그러한 결과물인 것이다.

환경과 미술가

나는 내그림을 원하지도 않는 마부를 위해서 진짜처럼 흉내 낸 정물화를 그린다. 또 나는 할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스프를 마시며 재깔거리는 어린아이가 봐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
림을 그린다. 그러나 독일 황제의 프라이드나 시카고 석유재벌의 허영심을 위해서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 더러운 것(그림)을 팔면 아마 만 프랑쯤은 받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차라리 교회나
병원 또는 시청건물의 벽면에 그리고 싶다 --- 폴 세잔느

지금 현재에도 많은 미술관에서는 전시회가 열리며 몇몇들의 잔치가 계속 열리고 있다.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주부이거나 실업자이거나 누구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전시장에 가서
그림을 보며 창작물의 아름다움과 작가의 창작에의 고통을 느끼는가. 필자도 아는 이들에게 전시회가
있다는 연락이 오면 안면으로 가기도 하고 가서는 작품이 좋아졌다고 서툰 평도 한다.
전시회 오픈은 그저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술이나 한 잔 하는 그런 자리가 되고 말았거나
고도의 비즈니스가 넘나드는 자리가 되었다. 아직도 미술이 자유로운 의식의 산물이고 그 의식은
순수한 것이며 사회적인 현실에 접근하는 것을 미술의 타락이니 속되니 하는 식의 경향이 많은 편이다.
자기들만의 은밀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와 대중이라는 넓은 벌판을 포기하고 작업실과
전시장과 평론의 온실에서 자유를 선언하고 스스로 온실의 꽃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함과
자유도 현실의 미술유통구조의 사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미술관, 화상, 언론, 비평가,
수집가로부터 말이다.
이에 대항하여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 미술의 바람직한 사회적인 기능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의 미술가들은 현실의 제문제에 대해 대중과 함께 인식하고 함께 개선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으니 저 80년대의 민중미술이 여기에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80년대의 민중미술
작가들은 미술관을 달가와 하지 않고 미술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찾으려한 것이다. 대중과
함께 하는 미술의 민주적 문제, 열린 구조로서의 미술,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우리가 생활하는
거리의 활짝 열린 공간 속으로 뛰어든 벽화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걸개그림이 80년대의
전투적 미술이었다면 벽화야말로 90년대의 대중적 환경미술인 것이다.
이 벽화운동의 물결은 IMF라는 상황을 맞아 공공근로사업이라는 또다른 형태로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그 범위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환경미술은 벽화 뿐 만 아니라 조각공원, 영상미술제, 행위미술제,
설치미술, 나아가 거대한 규모의 대지미술 등으로 발전해 갈 것이며 자치단체와의 긴밀한 연대
속에 도시환경 전체를 미학적으로 조정하는 역할도 환경미술의 범주에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인천에 있어서도 도시개발에 관계하는 계획입안자, 건축가, 미술가, 미술평론가, 지역문화가,
역사학자, 주민대표, 행정가 등으로 폭넓게 구성된 환경관련 위원회가 존재해야 하며 환경미술,
공공미술이 시각예술을 통한 인간적인 도시만들기 작업이 되도록 지도, 지원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경미술을 전문화한 미술단위가 필요하고 시민의 이에 대한 관심과 참여 또한 절실하다.

1) 99.3.22일자 한국일보
2) 경노훈의 글[척박함의 도시 이미지] 중에서
3) 99.5.20일 인천일보
4) 이상하의 글[도시공간과 환경조형물]중에서
5)정정엽의 글[전혀 부적절한 인천의 건축조각물]중에서
6) 99.1.14 인천일보
7) 97.10.16 한겨레신문
8) 99.3.25 부평사람들 제36호
9) 99.5.13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