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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원고] 조형연구소와 나(1999)

왕거미지누 2006. 10. 6. 00:43
은혜에게 보내는 글

은혜야!
오늘은 날이 징하게 덥다야.
모내기가 끝난 논이야 벼들이 그래도 푸릇푸릇 잘 자라겠지만 마루에 누워 먼 산 너머 하늘에 흰구름 보며 낮잠을 자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겠지만 이놈의 도시생활이란 게 땅도 없고 나무도 없고 더구나 먼 산이며 그 위로 보이는 구름조차 없는 생활이라서 덥다는 게 그냥 더울 뿐이니 참 징하지?
이럴 땐 강화에 사는 용철이 형이 참 부러워. 적어도 산과 하늘과 구름과 새들과 바람과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날 테니 말야.

인터뷰를 이메일로 한다고 했는데 무슨 질문이 이렇게 재미가 없냐? 차라리 대화방에서 채팅하는게 더 낫겠다싶다. 하기사 채팅으로 하면 사족들이 많아져서 잘못하면 삼천포에서 놀기도 쉽겠지만 말야.
우야튼 답변 아닌 답변을 여기 보낸다.

1. 신상명세(직업, 나이, 가족사항)

이건 니가 봐도 질문이 아니지? 언니 이뻐요? 하고 물어봤다면 이야기가 쉽게 풀렸을텐데.
그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쩌구 저쩌구.....이렇게 쉽게 이야기가 되가는 거지.
검찰도 이렇게 물어본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나이는 몇 살입니까?'...하고 구체적으로.
암튼 대답해주께.
직업: 벽화가, 환경미술가
나이: 드래곤벨트의 37
가족사항: 중전마마와 하늘,하얀누리공주와 1500 전세의 궁궐에 거처.
됐쟈?

2.조형연구소 소장으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아울러 개인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답변도 부탁 ^^)

조형연구소가 뭐 하는지는 아마도 은혜 니도 잘 모르리라 생각한다. 벽화기획 제작, 환경.공공미술 기획, 환경색채디자인.....이라고 창립문서에 씌여져 있고 나 역시 그러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는 벽화제작이 주 업무이고 어쩌다 장승제작과 색채디자인의 일들이 있기도 해.
조형연구소는 이런 일을 하고, 지금도 부천서초등학교에 벽화를 그리고 있지. 소장으로서의 활동이라면 뭐가 있겠어.
다음에는 뭐할건지, 또 여기저기 알아봐서 일을 만들어 나가야 하고, 중장기적 전망도 늘 고민해야 하고, 아무래도 남자가 없다가 보니까 소장이기 이전에 짐 나를 때 무거운거 팍팍 드는거에 주력하고 있어. 그리고 홈페쥐를 챙기고 업데이트하는 일....
조형연구소라는 이상한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때는 그냥 별 생각없이 (인천)조형연구소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냥 거리의 미술, 풍경 속의 미술을 하는 하나의 팀이라고 생각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우리와 하는 일이 같거나 비슷한 팀들은 참 많아. 물론 우리보다 잘 하고 능력있고 더군다나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제작하는 능력은 그 어디에도 없겠지.
거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
그게 벽화든 그냥 색채디자인이든 입체조형물로든 거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미술이 있는 공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애인을 만나 함께 걷고 혹은 한잔 걸치고 어깨동무하고 낄낄거릴 수 있도록 했으면 해.
그래서 소장이기 이전에 우리가 하는 일에 기분이 좋아. 잘 하고 있지? 푸하하하!!
그리고 이런 일을 하려는 마음들과 점점 더 만나게 되니 더더욱 기분이 좋아.

개인적인 작품세계에 대해 물었는데 뭐가 개인적이고 뭐가 안 개인적일까?
조형연구소에서 하는 모든 작업은 그게 내 개인작업이기도 한데 이거 말고도 개인작업을 묻자면 그냥 끌적이는 수채화 같은 걸 말하는 건지. 수채화를 좋아하고 시간 난다면 인근의
아무동네가 가서 수채화를 하기도 하고 또 하고도 싶지만, 막상 시간이 그다지 없어.
한 달 전쯤에 수산동에 가서 수채화 했던 게 최근의 야외사생의 마지막이었나. 하하 아니다. 여기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바깥에 나가 그렸으니 야외사생이겠지. 그림을 무슨 큰 의미를 가지고 그리는 게 아냐. 그냥 그리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림을 계속 접하므로서 벽화와 환경미술에 대해서도 계속 열정을 가지는 거라 생각해. 어떻게 보면 캔버스의 문제 아니겠냐. 쪼매난 종이에 그리거나 100호쯤의 캔버스에 그리거나 아님 커다란 벽에 그리거나 하는 거 말야. 물론 큰데다 그릴 려면 비용도 비용이고 물감의 성질도 다른 만큼 그에 따른 노하우가 있어야 하지. 데군다나 거리의 그림은 결코 자기 자신만의 그림이 아닌 이상 보려는 이들의 받아들이는 마음도 무지 고려해야하지.

(잠깐 나갔다 올 께. 일이 있어서 말야.
.....일 끝나고 들어옴. 전화가 안된다고 했는데 그게 한국통신에서 아직 연결시켜주지 않아서 리 결국 전기의 해결사인 내가 한통에 전화해서 빨리 고치라고 해서 짜짠! 해결됨. *^_^*)

3.예술활동가로서 수배와 감옥생활을 하기까지 공통과 그 현재적 의미부여에 대해

옛날에 한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지.
함께 밥먹고 함께 농구도 하고, 또 일요일이면 야쿠르트와 요플레로 만든 막걸리를 마시며 뽕짝을 불러댔던 사람들이 있었지. 참 잼났던 시절이었어. 뭐 할거리없나 궁시락대다
그림 그리겠다고 한달 가까이 떠들고 개기고 하여 막상 그림도구가 들어와 놀시간이 없어져 황당했던 적도 있었지. 푸하하하~!
은혜야.
혹시 니가 들어갈 일이야 없기도 하겠지만, 거기도 디게 잼있다.
추천하지 내가. ㅋ.ㅋ
참 이야기 순서가 바꿨네. 수배란게 이제 생각하면 너무 우습지만 도대체 그림쟁이들을 수배하려는 발상자체가 우습지만 그 당시 사회자체가 워낙 블랙코메디였으니 그렇다 치고, 잡혀간 선배형이 살았던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와서 살았었어. 대공분실 얄마들도 나중에 디게 한탄하드라. 설마 거기서 살 줄은 몰랐대나 어쨌대나.
근데 잠수함 탄다는게 생활이 좀 그러자나. 건축 공사장에 가서 전기일 하면서 집에오면
그저 하는게 판화하기 였지. 하루에 서너시간을 판화를 했었지. 내가 말야. 비록 100일만에 잡혀서 좀 억울해. 판화좀 더 하고 잡혔더라면 아마도 한 판화했을 텐데 말야. 그러다 인사동 전시장가서 그림보고 나오다가 덜컥!
당사자는 별로 고통이 없어. 오히려 엄마나 아부지가 힘들어 하실까 걱정일 뿐이지. 밥주고 잠 재워주워 주고 도둑들까봐 밤새 지켜주는데서 고통을 겪는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나쁜 놈이겠어. 거의 신날거 까진 없지만 그냥 '인생의 소풍'같았어. 놀고 먹고 노래하고 고함지르고 그림그리고 무지 편지도 쓰고.....
봐봐. 민노총에 이수호(선생님), 전교조에 이부영(선생님), 지하철노조에 배일도 성님....그리고 나 이진우! 봐봐 다들 잘 살고들 계시자나. 특히 난 말야. 그예전부터 지금까지 즐겁게 살고 있어. 잼없는 일은 하지 않아. 과거든 현재든 말야.

4.문학적인 소질이 뛰어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문학적 소견 한마디
(문학은 무신 문학, 정말 할 말 없어. 한때 문학회에 가입되어 있었던 것은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화를 그리기 위해서 였었지. )

5.의외로 기술(전기)노동을 하고 있는데. 그 개인적인 의의랄까 고집에 대해, 궁금합니다.

맙소사, 은혜야!
의의는 또 뭐고 고집은 또 뭐냐?
전기일은 좀전에 이야기했지. 잠수함 탈 때 전기일했다고.
사실 지금의 이 직장은 원래 의류학원 다니기 위해서 들어 온거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그 회사에 부서가 없어지면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학원비를 벌어볼까 하고 들어온게 여기야. 만약 내가 학원을 졸업했다면 아마도 지금쯤이면 가위를 들고 있는 의류회사의 재단사가 되어 있겠지. 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웃긴다. 내가 재단사라니! 푸카카카! 하지만 막상 재단했다면 잘 했을거야. 그럼 내옷은 한패션하게 해 입었을텐데....쩝 아쉬워라!
전기일을 하면서 학원을 포기하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원래 하고 싶었던 벽화와 같은 일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드뎌 같이 벽화 할 친구를 만나고 벽화가 그려지고 그러다가 또 그려지고 하다가 서울의 M조형의 용덕이 형을 찾아가 만나 조언을 들으면서 점차로 지금의 조형연구소의 그림이 그려지게 된 거야.
전기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재미도 있어. 전기에 관한 해결사이니까 말야.
그리고 지금의 근무조건, 24시간 맞교대 근무가 내게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야.
비록 이계통의 일이 월급이 박하고 명절이나 일요일이 없는 조건이지만 다행히도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 되는거야. 그래서 며칠 전 승진하라는 것도 하지 않았어. 지금의 기사보다 승진하면야 월급도 오르겠지만 주간 근무가 되니 내겐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어.
하여튼 은혜야. 여기 직장이 무신 고집과는 전혀 상관이 없거던, 그냥 좋은 그림 좀 하려다 보니 있게된 직장이라는 것만 잘 알아주라.
그리고 이 전기일이 내겐 가족의 가장이라는 생계에 관한 책임이기도 하고, 덕분에 조금은 접어지지만 그래도 꾸준히 조급하지 않게 조형연구소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기도 하거들랑. 그러니까 혹시나 무신 모임이 있거나 해서 안나간다는 것은 그런 중대한 회사 근무에 걸려 있음을 쪼매 알아주라.

짜잔!! 이로써 공식적인 인터뷰 답변은 끝!

야, 은혜야!
가족사진 같은 거야. 그냥 니가 우리가족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길 바래.
참, 추천해주라는 사람은 문학하는 사람인데 문학위에 들어 있나 몰것다. 이름은
조혜영이고 노동자문학회 글터에 있는 사람이야. 노동자문학회가 문학위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문학위 회원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겠어.
대신 니가 추천 직접해서 하면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