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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웹진]색칠하면 거리도 꿈을 꾼답니다-환경미술가 이진우(2004)

왕거미지누 2006. 10. 6. 01:23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은 90년대 세대의 리얼리즘 미술을 회고하는 ‘리얼링 15년’전을 열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 소개되는 창작소그룹 가운데 하나가 ‘거리의 미술 동호회’다.
환경미술가 이진우 씨는 일명 ‘거미동’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커뮤니티 ‘거리의 미술 동호회(cafe.daum.net/streetart)’의 운영자다. 미술관에서 기획한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한 미술관 앞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와의 대화라니, 좀 어색한데요.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별로 자신 없거든요. 그저 느낌

대로사는 사람인걸요.”
질그릇처럼 투박하게 웃는 거리의 화가는, 그러나 회원수가 삼천여 명이 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벽화운동을 대중적으로 이끌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대를 졸업한 이후 벽화에 대한 고민을 놓칠 수 없었던 그가 2000년도에 개설했던 커뮤니티는 지금 거리를, 그 거리에 사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벽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보다 전문적인 성격의 벽화모임을 의도했었는데 의외로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죠. 그 해 회원들과 함께 홍대 ‘거리미술제’를 참가한 이후 조금씩 동호회 규모도 커지고, 다양한 벽화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미동’은 그 동안 전국의 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시설, 저소득층 주거지역, 공부방 등 50여 곳의 벽화를 그렸다. 스스로를 거미라 부르는 ‘거미동’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잘 짜여진 거미망 안에서 각 지역별로 활동하고 있다. ‘거미동’의 벽화작업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현재 회원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벽화 의뢰를 받고 있다.






“벽화가 좋은 이유는 직접 작업을 해보면 알죠. 벽화를 그리기 전 잿빛 벽과 그린 후의 벽은 전혀 달라요. 공간의 표정이 확 바뀌죠. 벽화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런 변화에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벽화를 그리겠다고 찾아온 낯선 이들이 달갑지 않던 동네 분들도 화사한 그림이 그려진 벽을 보고 감탄한다. 예쁜 빛깔로 단장한 초등학교 장애아학급의 아이들은 다른 반보다 예쁜 자신의 교실이 자랑스럽다. 거미동 사람들과 붓을 함께 꼭 쥐고 꽃에 색깔을 입히는 시각장애 아이들의 얼굴에 꽃물 같은 웃음이 번진다. 거미동 사람들이 다녀가면, 벽지를 새로 바른 집처럼, 각박한 생활공간이 파스텔로 물들어 밝고 활기차진다. 그러나 벽이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진우 씨는 그들의 생활공간이 전보다 행복한 곳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제2차 '벽화가 있는 열우물길' 벽화프로젝트는 힘들었지만 그에게 더없이 보람된 작업이었다. 그의 가족이 사는 십정(十井)동. 그의 아이들이 뛰어 노는, 외롭게 허물어져가던 십정동의 골목에 그는 한 달 내내 벽화를 그렸다. 그리고 매일 벽화가 있는 열우물길을 걸으며 주민들의 인사를 받는다. 아이들도 아빠를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란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 대가 없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제가 조금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벽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을 그리면, 저는 그들에게서 소중한 의미와 기쁨과 희망을 받죠. 제가 받는 것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에너지가 됩니다. 서로 나누는 거죠.”
그에게 봉사라는 말은 없다.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은 없기에 봉사란 성립되지 않는다. 그가 지향하는 나눔의 미학은 그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거면 족하다.






“제 아버지는 농부세요. 아무리 좋은 전시를 한다 해도 농부인 아버지는 미술관에 가지 않죠. 미술을 공부할 때부터 닫힌 공간에 갇힌 그림이 과연 진정한 미술일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바깥으로 나왔고, 거리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림이 제가 생각하는 미술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거미동은 늘 시대와 함께 한다. 벽화뿐만 아니라 반전평화를 위한 설치미술을 하고, 효선미선 추도미술전에 참가하며, 소아암환우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리기도 한다. 붓으로 시대를 고민하

는 이진우 씨와 거미동 사람들의 작업은 80년대 이후 퇴색된 리얼리즘을 고민하는 예술가들의 현주소다.
생계를 위해 십 년째 전기기사로 일하는 그지만 그림을 좋아하기에 붓을 놓은 적이 없다. 끊임없이 수채화와 벽화를 그리는 그는 잘 그릴 때까지 평생 그릴 거라고 쾌활하게 농담을 한다. 그 뿐인가. 이진우 씨는 현재 벽화제작 워크숍과 또 다른 벽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며, 미술을 통한 다양한 문화적 기획을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을 향해 표출되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의 그림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는 한.

글ㆍ이진영<소설가>, 사진ㆍ정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