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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이것저것◀/공공미술사례들

[스크랩] 강원) 구름이 머무는 영월 모운동 벽화마을^^

왕거미지누 2010. 5. 4. 22:04

 

탄광업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한 산골마을이 있다. 폐광 이후 20여년 침잠의 세월을 견딘 탄광촌이 이제 잿빛을 벗고 알록달록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구름이 모이는 동네, 모운동’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마을은 구름이 모일 정도로 첩첩산중에 파묻혀있다.
산골마을의 부귀영화를 이끈 건 땅속 그득한 석탄이었다. 1960~70년대 마을은 ‘서울 명동만큼 비싼 동네’였다.
작은 탄광촌에는 극장, 우체국, 이발소, 미장원, 세탁소 등 없는 게 없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마을의 영화는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함께 사그라져 갔다. 그 후 20년, 잿빛으로 변한 마을의 풍광에 알록달록한 희망의 씨앗이 움터났다.
 

첩첩산중 탄광마을의 흥망성쇠

구름이 모인다는 모운동에 구름안개가 신비롭다^^


강원도 산이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길을 에워싼 산줄기마다 으리으리한 풍광을 뽐낸다. 영월 모운동 마을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
가파른 산으로 더욱 깊게 이어진다. ‘이런 산골에 설마 마을이 있을까’라는 의심은 해발 1,087m 망경대산의 7부 능선까지
올라서야 비로소 사라진다. 산속에 옹기종기 들어선 집을 보고 있노라면 첩첩산중에 마을이 생긴 까닭이 제일 먼저 호기심을 자극한다.
뒤 이어 또 다른 의문이 밀려온다. 바로 집집마다 그려진 오색 창연한 그림들 때문이다. 고즈넉한 산골 풍경과 알록달록 그림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나라’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을. 대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걸까.

때마침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주민과 초청객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마을의 변화를 축하하는 날이다. 먼저 주민들은 마을의
과거를 회상한다. “옛날엔 여기 광부만 2000명이 넘었지. 월급날에는 영월시장보다 더 큰 장이 마을에 열렸어”라며 전봉기
할아버지는 옛 영화를 회상한다. 별표연탄으로 유명했던 옥동광업소는 1960~70년대 마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광부로 일했던 박효정씨는 “석탄을 캐면 열차가 영월까지 실어 날랐지. 저 산위에는 석탄 나르는 케이블카가 있었고.
여기 극장도 있었잖아. 서울 명동에서 개봉하면 그 다음엔 바로 우리 마을에서 영화를 틀었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1989년 광업소가 문을 닫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을 떠났다. 주민들은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만 마을에 남았다며 한숨짓기
일쑤였다. 신부남할머니는 “많을 때는 학생만 1000명 정도 됐었지. 그런데 이렇게 마을이 조용해져버린 거야”라고 말한다.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죠.

모운동 동화마을답게 표지판도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었다.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마을은 활기를 잃어갔다. 폐광 20여년, 만명에 달하던 주민은 31가구 55명이 됐다.
마을 대부분의 시설은 문을 닫았고 집이 있던 자리는 공터로 변했다. 이장 김흥식씨는 “2살 때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 마을에 들어왔죠.
그때만 해도 여느 도시보다 더 화려한 마을이었어요. 폐광된 이후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기 전까지는 말이죠”라고 말한다.
왜 마을을 떠나지 않았냐고 묻자 “아내도 몇 번이고 이사를 가자고 했었죠. 그런데 저는 어디서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족들을 설득했어요”라고 단호하게 밝힌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이장의 말은 ‘동화나라’가 된 마을의 변화를 단번에 설명해준다.
마을 표지판, 구판장 간판, 주택 벽과 문, 우체통과 지붕까지. 마을은 온통 새옷을 입었다. 2006년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것이 계기였다. “처음 사업비로 2천만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기획사에 마을 가꾸기를
맡기면 그 돈도 모자란 거예요. 그래서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꾸미기 시작했죠”
 

주민이 직접 그린 ‘비뚤배뚤’ 동화그림


마을 꾸미기에 있어 가장 큰 걱정거리는 벽화그리기였다. 전문적으로 벽화를 그릴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김이장은 하는 수 없이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 손복용씨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손씨는 “처음부터 동화그림을 그리려던 건 아니었어요. 동화그림은 조금
비뚤배뚤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선택한 거죠”라며 미소 짓는다. 밑그림은 손씨가 직접 그리고 주민들이 색을 칠해나갔다.
개미와 베짱이,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미운 오리 새끼, 토끼와 거북이 등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주민들은 벽화에 그치지 않고 마을 꾸미기를 계속해 나갔다. 우체통, 문패, 표지판, 지도 등 마을 구석구석이 마술을 부린 듯 바뀌었다.
천덕꾸러기가 된 폐광을 이용해 ‘폭포’를 만들고 언덕 위에는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했다.
폐교된 학교 건물은 펜션으로, 회관에는 ‘모운동 자료관’과 ‘구판장’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곳곳에 벤치를 놓고 간이식당도 꾸려 놓았다. 봄, 여름이면 활짝 피는 복숭아, 살구, 진달래나무는
모운동을 ‘울긋불긋 꽃마을’로 만든다. 이제 마을에서 ‘잿빛 탄광촌’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안개구름이 피어오르는
마을에 비뚤배뚤 그림이 고개를 내밀 때면 모운동은 여지없이 상상 속 ‘동화마을’을 산자락에 펼쳐놓기 때문이다.

 
가는길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IC에서 나와 38번 국도 영월 방면으로 향한다. 연당교차로에서 59번 국도에 올라 영월읍을 지난다.
다시 88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김삿갓면에 들어서면 주문1리에서 주문2리 모운동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영월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모운동 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영월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하루에 4번 오전 6시, 오전 8시 50분, 오후 1시 30분, 오후 6시에 다닌다.

관련정보
모운동 http://www.moundong.com/
 


 

 

동화는 비뚤배뚤해도 보기 좋아요

오래된 집 벽에 만화주인공이 이사를 왔다. 왜 하필이면 ‘동화그림’이냐 묻자 마을 이장님은 “동화 그림은 좀 비뚤배뚤해도

보기 괜찮을 것 같아서요”라고 소박하게 답하셨다.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한 동화그림이 이제는 산골마을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석탄 케이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1960~70년대 마을에는 만명의 주민이 살았다. 광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당시에는

열차와 케이블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석탄을 실어 날랐다. 별표연탄으로 유명했던 옥동광산은 1989년 폐광됐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모운동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



 

기숙사의 화려한 변신

사진 속 건물은 폐광되기 전까지 광부들의 기숙사로 쓰였다. 광부들이 모두 떠나가고 대신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새롭게

기숙사에 들어왔다. 칙칙했던 기숙사 벽이 알록달록 새옷을 입은 셈이다. 지금은 주민 한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모운동 폭포

폐광된 탄광촌에 볼 것이 뭐가 있겠냐 싶지만, 모운동에 들어서면 예쁜 벽화그림부터 멋진 자연 풍광까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모운동 폭포는 폐광에 흐르는 물을 끌어다 절벽 위에 만든 인공폭포다. 높은 절벽에서 물이 떨어지다 말고

추위에 놀라 ‘얼음’을 외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을 주민 말에 따르면 모운동 폭포는 ‘영월의 그랜드캐니언’이란다.



 

모운동 자료관

농협으로 쓰이던 건물 2층에 모운동 자료관이 들어섰다. 탄광에서 쓰던 물품부터 집에서 쓰던 골동품까지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하는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돼 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탄광 속 인부의 눈을 밝혀주던 등불이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장비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우편함

도시에서 이렇게 아기자기한 우편함을 본 적이 있는가. 모운동의 우편함은 저마다 다른 콘셉트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집 벽에 동화그림이 그려지더니 우편함, 창틀, 표지판 등 마을 구석구석이 마술사의 손을 거쳐 간 듯 아름답게 변화했다.

이 모든 변화가 마을 주민들의 솜씨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골목

모운동의 집들이 알록달록하게 꾸며졌다 해도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대부분 오래된 건물이다. 1950년대 지어진

판잣집을 고치고 손봐서 계속 살아가는 주민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물건들이 그러하듯 모운동 집들은 저마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며 세월을 이겨나가고 있다. 집과 집 사이 좁은 골목에 서서 셔터를 누른다. 세월의 변화가 고스란히 렌즈에 들어온다.



 

사진 프레임

마을 주민에게 모운동 전경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마을을 둘러 올라가는 길을 알려준다.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올라가자 탁 트인 산자락에 사진 프레임과 벤치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셔터를 누르면 예술가가 찍은 사진처럼 기가 막힌 풍경을 얻어낼 수 있다.



 

광부 할아버지의 회상

취재를 갔던 날 때마침 마을잔치가 열렸다. 모운동 폭포 개장을 축하하는 흐뭇한 잔치였다.

뜨끈한 국밥과 도토리전, 배추전, 불고기, 떡 등 푸짐한 상차림에 식사를 하다 말고 광부 할아버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전봉기할아버지는 “옛날엔 여기 광부만 2000명이 넘었지.

월급날에는 영월시장보다 더 큰 장이 마을에 열렸어”라며 마을 옛 모습을 소상히 알려준다.



 

산골마을의 동화나라

강원도 영월을 찾았던 날은 낮에도 영하 13도를 기록하는 추운 날씨였다. 굴뚝에서는 저렇게 얼음이 얼어

산골마을의 매서운 추위를 과시하는 듯 했다. 동화그림을 배경으로 얼음에 초점을 맞췄다.

모운동 마을의 어떤 점에 반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산골마을에 펼쳐진 상상 속 동화나라’ 같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추위 속에서도 동화마을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아우라는 쉽게 잊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귀여운 상상력

우리가 흔히 일컫는 ‘시골’에 취재를 가면 마을 사람들의 순수함에 반할 때가 있다.

모운동에서는 주민을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벽화가 안겨주는 ‘귀여운 상상력’ 덕분에 시골인심을 미리 느끼게 된다.

잘 그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시작한 동화 그림은 보는 이를 베시시 웃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다시 문을 연 마을 구판장

1970년대 모운동은 극장 1곳, 교회 3곳, 요정 4곳 등 여느 도시의 번화가를 방불케 하는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당시 지어진 2층 농협건물의 규모만 봐도 마을이 얼마나 번성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농협건물에는 구판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요기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옛집

 새롭게 꾸민 모운동 집 앞을 내려다보며 찍었다. 31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연로하신 분들이다.

집 앞에 가지런히 쌓인 연탄을 보니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외지인을 보면 친절하게 이것저것 대답도 해주고 안내도 해주니 인심만큼은 옛날과 변한 게 없나보다.


 

모운동 지도

마을 입구에 큰 모운동 지도판이 서 있다. 그냥 여느 마을지도겠거니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집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어 지도에 표시해놓았다. 31가구 주민의 이름까지 사진 앞에 정성껏 적어놓았다.

김흥식이장은 “이 지도를 만들었더니 다들 보고 가서 따라하더라고요. 하하하”라며 웃는다.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이장의 명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료협조 : 경향신문^^

출처 : 포비와 깨구락지..메르치의 여행 보따리
글쓴이 : 포비와 깨구락지 원글보기
메모 : 좋은 사례가 될거라 봅니다